[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청주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단양 방향으로 달리다가 남제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82번 지방 국도를 탄다. 청풍대교 앞에서 오순 대교로 이어지는 20번 지방도로로 바꿔 타면 어느덧 청풍호반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쪽빛 청풍호반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는 산새가 고운 월악산 국립공원의 금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10분 달리면 정방사 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청풍호 옆으로 도로가 나있어서 멋진 풍경과 함께 드라이브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82번 도로에서 정방사 가는 길은 제천시에서 지정한 걷기 좋은 길인 청풍 자드락길이기도 하다.

능강교를 건너 능강천으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정방사로 향한다. 옥순봉로를 이용하여 정방사로 향하다 보니 좁은 외길 인지라 승용차 교행이 아슬아슬했다. 숲길이 약간 멀어도 걸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숲 속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아담하고 소박한 정방사가 나타났다. 거대한 암벽을 지붕 삼아 지어진 단출한 암자를 보는 순간 절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만 했다. 병풍처럼 암벽이 둘러쳐진 사찰 뒤로는 낙석들이 금방 쏟아 내릴 듯 위태로웠다. 협소한 사찰 경내는 절이 아니었다면 비박지로 적당한 터이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 대웅전은 지붕 일부분을 바위가 차지하고 있었다. 심한 폭풍이라도 불어 닥치기라도 하면 우듬지에 새집처럼 매달려 있는 절간이 휙 날아갈 것만 같은 데도 천년고찰로 건재하고 있다. '정방사 창건 연혁기' 현판을 통해 보니 662년(문무왕 2)에 의상(義湘)이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1825년에 중건하였다 하니 견실시공의 끝을 보는 듯했다. 이곳에서 수행하는 도반들이야말로 부처님의 은덕을 입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수행이 쉽지 않을 것만 같다.

정방사의 법당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이나 전형적인 조선 중기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몸에 비해 작은 편이며, 머리 정면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신체는 비례가 알맞으며 옷은 오른쪽 어깨를 반달형으로 덮은 형식을 보인다. 손은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내리고 있는데 아미타삼존불의 좌협 시 보살로서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주불을 모신 원통보전, 요사채, 산신각, 나한전, 종각과 해우소, 5층 석탑이 전부다. 사찰의 중심에 원통보전이 있고 왼쪽 옆에는 나한전이 오른쪽 옆에는 요사채가 있다.

좁은 공간에 건물들을 지어야 하니 오밀조밀하게 지어졌나 보다. 그간 사찰을 여러 곳 다녀봤지만, 이곳은 편안함보다는 불안감이 더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 쉽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한전을 돌아 관음보살상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겹겹이 산 그림자를 이어 청풍호의 물길이 한 눈 아래 펼쳐지자 빼어난 조망은 환상적이었다.

산 물결과 드넓은 청풍호수와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 보이는 듬직한 금수산의 뒷모습과 멀리 아련한 하늘 금으로 이어진 월악산의 실루엣은 감동의 크기와 깊이가 같았다. 구름이 머문다는 유운당. 실제로 이른 아침에 정방사에 오르면 구름이 머물고 있다하니 그만큼 높은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바위마다 분재처럼 자리 잡은 노송의 풍치와 발 아래로 정방사 뒤 바위틈으로 흐르는 석간수는 물맛이 아주 좋았다.

일망무제의 유록빛 바다를 뒤로 하고 돌아앉은 스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정갈하게 삭발한 머리와 어깨 위에 걸친 회색빛 장삼에서 평생 고행하며 수행한 선승의 기품이 전해 온다.

구름바다의 굽이치는 동세(動勢)가 마치 백팔번뇌에 얽혀 고통 받는 중생의 삶을 형상화한 듯한데, 연좌에 앉은 스님의 모습은 미동 없는 바위처럼 고요하다. 마치 그 모습이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한 점 티끌 없이 청정한 연꽃이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세상의 부질없는 번뇌와 애증을 모두 내려놓고 고요히 서방정토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진정한 일망무제의 고요함을 다시 본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숲속에는 바깥의 온갖 소음들이 다 차단된 이곳에 들어서면 머무는 한 누구나 신선이 된다. 나그네를 위해 준비해 놓은 이 좁은 공간은 마음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갈 곳을 정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사월도 두 번 봄도 두 번으로 길어진 윤사월, 정방사 하늘에 핀 물거품 구름이 정신에 낀 때를 깨끗하게 세신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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