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젊은 여인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현란하게 춤을 춘다. 배꼽티가 밉지 않은 매력적인 외모이다. 굴곡진 몸매와 의상 또한 세련된 이미지의 여성이다. 장소를 바꿔가며 춤을 추는 동안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녀가 스쳐 가는 동안 든 생각은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난다. 텔레비전 광고를 이토록 흥미롭고 관심 있게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시청자를 사로잡은 그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가상 인간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모습과 똑같을까. 표정이나 몸매, 춤추는 몸짓까지 인간과 다름없어 보였다. 신문에서 그녀의 기사를 읽다 너무나도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다. 기사가 믿어지지 않아 광고를 다시 돌려보나 허무해질 뿐, 컴퓨터로 제작한 가상 인간이 나의 심장을 흔든 격이다.

나를 사로잡은 그녀의 이름은 '로지', '오로지'에서 뜻을 가지고 왔단다. 나이는 22살, 외모도 세계여행, 요가, 패션에 관심 많은 여성답다. 현재 S 브랜드 홍보 모델로 활동하며,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수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다. 실제 연예인처럼 자신의 화보나 일상을 SNS에 수시로 공유하고, 팬들에게 댓글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배우가 기획사와 계약을 맺듯, '로지'도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맺어 전문적인 활동을 펼친다니 공상 영화가 현실로 와 닿은 느낌이라 놀라울 뿐이다.

최근 기업들이 앞다퉈 가상 인간 캐릭터에 주목하고 있단다. 가상 인간은 더욱 늘어날 형세이다. 인간은 실수하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가상 인간은 인간처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관리가 수월하다니 씁쓸해진다. 광고도 이제 가상 인간을 내세워 돈벌이하고 있다. 광고 속 인물의 속내를 알지 못하면, 인간인지 가상 인간인지 알지 못한다. 뉴스매체를 보지 못한 사람은 광고 속 인물이 사람으로 뇌리에 인지될 수도 있다.

광고처럼 연예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로지'가 차지한다. 어디 그뿐이랴. 소설을 쓰는 웹이 진화하면, 작가라는 직업도 사라질지 모른다. 과학 문명은 거듭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고 있다. 요즘은 손안에 시스템으로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일을 처리하는 시대이다. 사무실에서도 직원들과 점점 대화가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그리고 전자 결재를 하니 상사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고, 컴퓨터 앞에 앉아 8시간 일만 하면 된다는 사고가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코로나 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 식당도 거리도 한산하다. 사람들은 집안에만 있으니 우울하단다. 그 와중에 광고 속 아리따운 가상 인간이 내 마음을 훔쳤으니 어찌하랴. 여하튼 기계문명과 바이러스로 사람 냄새를 못 맡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려움마저 든다. 내 영혼을 넘보지 못하도록 수시로 단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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