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하얀 샤스타데이지와 남보랏빛 수레국화가 앙상블을 이룬다. 보이지 않는 신이 도란도란 빚어놓은 오묘한 꽃이 마음까지 행복으로 물들인다. 솔 숲 사이로 맑은 볕늬가 반짝이면 요정의 나라에 온 듯 감미롭다.

꽃은 다 예쁘지만 무리를 지어 이렇게 군락을 이룰 때 더 아름답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꽃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한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봄 내내 피어서 기쁘게 하니 모두들 지지 않는 꽃으로 알고 당연시했다.

그 사이 아카시아 진한 향이 온 동산을 뒤덮었고, 바통 타치 하듯 고혹적인 밤꽃 향이 잠두봉을 휘감았다. 달빛 밝은 밤 잠 못 들게 하더니 껍질 벗듯 어느 날 누렇게 변색되어 벌레같이 밢힌다. 그 사이 황금빛 햇살을 닮은 금계국이 활짝 피어났다.

피거니 지거니 앞 다투어 개화를 하더니 씨방을 맺었다.

아무리 예쁜 꽃도 대궁이 누리끼리하게 변하고 말라가면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한창 꽃 피울 때 고운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내년의 영화를 위해 씨방을 맺어도 지난 생각으로 곱게 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새물내 가득한 신록에 눈길을 준다. 연둣빛 새순은 애기 손같이 예쁘고 갈맷빛 녹음은 청소년같이 싱그럽다고 찬탄한다. 나무는 가을이 되어도 고운 단풍으로 마지막 장관을 보여준다고 긍정적으로 끌어올린다.

언제는 꽃에 빠져 살더니 이제는 녹음이 예쁘다고 한다. 선인들도 녹음이나 풀이 꽃보다 예쁘다고 녹음방초 승화시라고 했지 않는가 하고 비약을 한다.

아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물을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생각이 밀려 나면 또 다른 생각이 들어앉는다. 인간은 하루에 6만 번의 생각을 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하긴 대 문호 톨스토이도 "나의 변덕스러운 생각을 인류의 법칙으로 만들어 낼 이론을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라고 고백했다.

'썩은 풀 속에 빛은 없으나 반딧불이 태어나 여름밤을 빛낸다. 깨끗함은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어두움에서 비롯된다.'라고 채근담은 일러주는데 우리는 보이는 것, 아는 것에 연연해서 웃고 웃는다.

이영희 수필가 

'잘난 사람보다 편한 사람이 더 좋더라.'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꽃이 한창 개화했을 때처럼 화려하고 빛나게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백세 시대가 아닌가. 선택해서 살 수 없어도 한동안만 화려한 꽃의 삶보다 일생을 그럴듯하게 사는 나무의 삶이 좋을 듯하다.

매서운 바람이 불면 잎은 미련 없이 떨어져 내년을 위한 거름이 된다. 몸체는 의자도 되고 펄프도 되며 그도 저도 아니면 땔감이 되어 차가운 온돌방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꽃보다 나무다. 푸른 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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