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코로나 19로 집콕만 하는데도 세월은 건들마처럼 설렁설렁 잘도 간다. 미래의 비전은 제시 못 해도 과거의 포로는 되지 말아야 하는데 애꿎은 그리움을 냉수 마시듯 들이켜고 있다.

꽃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운 상념, 칙칙폭폭 기적소리를 내며 무심천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가 마냥 신기했다. 한 칸 두 칸 세다 보니 기차는 아스라이 멀어졌다. 무심천의 너른 품도 마음을 달뜨게 했고, 그 위를 달리는 기차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는 듯 조마조마했다. 오지마을의 소녀에게 무심천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 버스터미널, 활기 넘치는 서문시장은 신세계였다. 눈요기만으로도 신나고 즐거웠다. 올케언니가 사준 풀빵 한 봉지에 감격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 못 할 촌극이지 싶다.

중학교 때이다. 무심천 제방 밑 오빠 신혼집에 놀러 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자가용이 없을 때이니 시내 곳곳을 걸어 다녔다. 어느 날 충북의 수재들이 다니는 학교라며 지금의 한국은행 자리에 있던 청주여고에 데리고 갔다. 중학교도 감지덕지했기에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하라고 등을 도닥여줬다.

막상 청주여고에 입학했을 때는 시청 인근에 있던 청주역이 우암동으로 이전해 기차는 볼 수 없었다. 아쉬움을 청주의 젖줄 무심천이 고운 빛으로 다가와 방실방실 웃으며 달래줬다.

무심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처럼 이사하는 곳마다 5분 정도 거리에 있어 나도 모르게 내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 수업료 납부 기한을 넘겨 행정실에 불려가도 나보다도 더 걱정하고 있을 엄마와 오빠들을 너무 잘 알기에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했다. 저녁에 무심천 가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호소하고 나면 마음이 소쇄(瀟灑)해졌다.

요즈음 무심천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벚꽃과 개나리, 은빛 물결로 철철이 옷을 갈아입으며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게다가 직지의 향기까지 담아 미래를 품은 도시 청주를 빛내며 명소로 부각하고 있다. 환상적인 튤립 꽃밭 등 사계절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고, 수변 산책로, 자전거 도로, 곳곳에 운동기구가 있어 청주시민들의 건강지킴이 노릇도 단단히 한다.

가족이나 연인이 손잡고 꽃구경하며 산책하는 모습, 건강을 위해 열심히 걷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힘든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60, 70년대에는 기쁨보다는 슬픈 사연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싶다. 가난으로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해 배움에 목말라 허덕이는 사람, 허리띠를 졸라매며 부은 곗돈 떼었다고 울부짖는 사람, 굶주림에 지친 몸을 곧추세우기 위해 찾는 등 슬픔과 고난을 씻어내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무심천은 별처럼 수많은 사연을 쏟아내도 변박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듬었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지금과 달리 예전엔 기화요초 하나 없고, 운동기구 하나 없이 수수한 들풀만 무성했다. 그래도 늘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무심히 흐르는 듯해도 힘듦 속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행복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주었다. 해포이웃처럼 친근한 만세불역 청주의 젖줄 무심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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