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빗속에 청초한 자태, 눈에 익지만 정체를 모르겠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처럼 여러 번 본 보았건만 이름을 모르니 답답하다. 오래전부터 앞 뒤뜰에 곱게 핀 꽃 이야기다. 작은 연잎 같은 잎사귀에 빨강 주홍 노랑꽃이 피었다. 가족 누구도 이름을 모르는 눈치다. 꽃에게 묻는다고 일러줄 것도 아니고, 이름을 알아야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지 답답하다.

예전에도 이런 답답함이 있었다. 야생화, 산야초, 우리 꽃에 관한 책들을 보아도 딱히 '이거다' 하는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연은 가끔 답답할 때가 있다. 내 무식을 골탕 먹이려는 심산인 것 같다. 돌아서라도 가야지, '연꽃 닮은 꽃'이라고 치고 검색을 한다. 엔터를 누르자 곧 주르르…, 꽃 사진들이 쏟아지고 '한련화'가 비슷하다. 확대하니 그래, 맞다.

녹색치마에 다홍저고리를 받쳐 입은 듯하다. 기억을 더듬으니 저 지난 달 쯤 종묘사에서 봉투에 꽃 그림이 있는 한련화를 사왔다. 까맣게 잊었다가 실제 모습을 대하니 몰랐던 게다.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식이 그런 식이다. 책으로 꽃 이름을 익히니 만나면 긴가민가하고 꽃 진 뒤에는 더 모른다. 비슷한 부류도 많아 구별이 어려운 것들이 여럿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고 그저 여행기를 읽는 것으로 만족하니 지리산이 강원도에 있는 것 같고, 속리산이 경북이라는 안내판 해설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전국 일간지 기사 중에서 사건을 언급하며 청주와 충주를 구분하지 못하는 기사들을 대할 때 답답한 것과 같다.

한련화(旱蓮花), 땅에서 피는 연꽃. '한(旱)'에 가뭄이라는 의미 외에도 뭍, 육지라는 뜻이 있다. 연꽃이 더러운 곳에서 아름다움과 품위를 지킨다면 한련화도 작지만 아름다움과 품위는 차이가 없을 듯하다, 연꽃이 많은 꽃잎으로 풍성하다면 한련화는 다섯 개 꽃잎으로 단출하다. 뭔가 이 땅의 여인 같은 이름에서 강한 정서적 동질감이 느껴진다. 이 땅 어딘가에서 나고 자란 우리 꽃 같아 알아보니 남미가 원산지다. 먼 곳에서 이 땅으로 옮겨와 이제는 마치 이 땅 토종 중 하나같이 친숙하다.

네 꽃 내 꽃을 가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애달픈 역사에 우리가 피해의식을 떨치지 못한 것이지…. 빨간색에 거부반응이 없는 젊은이들은 앞 세대들이 지닌 아픈 상처가 덜 하려나. 때론 무리지은 한 가지 꽃들에서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러 종의 꽃들이 산과 들을 수놓은 곳에서는 화합과 조화의 멋스런 광경을 본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내게는 아직도 이름을 알고 싶은 많은 꽃과 나무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아직 무척이나 무식하다는 걸 침묵으로 깨우쳐준다. 이 무식함이 나를 답답하게 하고, 여기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이룰 수 없는 현실의 어긋남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한련화 이름을 알아내고 정감과 기쁨을 얻듯이,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꽃과 나무들의 답답한 침묵으로 나는 삶의 바탕을 더 단단하게 다져 갈게다. 혜원의 미인도에서 본 듯한 꽃이여, 이 땅에서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베풀고 오래도록 사랑받으며 살아가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