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얼마전 예배 설교중 들은 예화의 일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연히 TV에서 본 초등학교 저학년과 할머니 단둘이 살아가는 가정 이야기라고 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릴때부터 애비, 에미없는 손자를 키운 할머니가 '어떻게 해야 잘 키웠다고 할까?'하며 늘 노심초사하신다. 행여나 '부모없는 자식이라 저 모양이지?' 이런 비난의 말을 들을 까봐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올곧게 키우려고 전심전력을 다했다. 사는 곳이 농촌이라 밭 농사 외에는 돈을 벌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밭에 콩을 심었다. 그리고는 식사때마다 손자의 밥에 콩을 많이 넣어주었다. 그러면 손자는 다시 '할머니, 저보다 할머니가 콩을 많이 잡수셔요'하며 콩을 할머니 진지에 가져다 놓고, 이에 뒤질세라 또 할머니는 다시 손자의 밥에 콩을 가져다 주면서 '얘야, 니가 콩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야지 이 할미의 마음이 좋지 않겠느냐'하면서 손자의 얼굴을 쳐다보신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기자가 손자에게 말을 건넨다. '할머니가 너를 사랑해서 너 밥에 콩을 넣어주는 데 그렇게 콩을 안 먹고 다시 할머니한테 드리면 얼마나 할머니 마음이 아프시겠니?'하고 물으니 철없어 보이는 초등 저학년인 손자는 '저도 할머니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할머니는 제가 무엇이든 사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서도 다 사주셨어요. 그런 할머니가 건강하시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제가 콩을 먹으면 할머니는 콩을 더 많이 캐야 해요. 그 콩을 시장에 팔아야 저를 키워주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할머니가 주시는 콩을 덜 먹으려고 하는 거예요'하며 어린 손자의 눈가에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이 저미어 온다. 어린 손자가 무척 대견스럽다. 마음이 곱다.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겉모습은 마냥 철없는 아이였는데 그 마음속만은 무척 깊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바로 이거야, 우리 아이의 심성은 고와, 이 고운 심성을 어른들이 더 곱게 활짝 피어나도록 키워주어야 해'하며 무릎을 쳤다. 그 아이가 생각하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어느 것보다도 값진 배려이다.

배려(配慮)의 사전적 의미는 '보살펴 주려고 이리저리 마음을 써주는 것'으로 풀이돼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고, 남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무엇인가를 나누려는 마음이며,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이다. 배려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자세이다. 그런 마음은 그 사람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배려만큼 인간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는 윤활유 또한 없다. 하루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배려들이 모여 삶을 풍족하게 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인 메난드로스가 역설한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오는 배려다'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자리잡는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나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를 짓는다. 아마 며칠전에 들은 손자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그 갸륵한 마음과 눈가의 이슬이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다시한번 손자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그 갸륵한 마음에 더없이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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