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미래유산을 찾아서 - Ⅶ. 1930년대 전통한옥 '옥천 정주영 가옥'
충북의 미래유산을 찾아서 - Ⅶ. 1930년대 전통한옥 '옥천 정주영 가옥'
  • 이지효 기자
  • 승인 2021.08.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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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남향·사랑채 동향의 '직교축' 2칸 온돌 3면 전후모퇴 구성 눈길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보은과 옥천 경계에 위치한 덕대산과 금적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정남향으로 들어서 있는 옥천의 정주영 가옥.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5칸 전후모퇴집인 이 가옥은 근대기 전통 건축기법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중부지역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하고 있는 민가이다. 이곳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수학하던 곳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정주영 가옥은 1934년 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돼 있다.

정주영 가옥은 15년 전 문화재지킴이들에 의해서 이름지어졌다. 솟을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과 아름다운 조경, 비교적 한옥 원형이 잘 보존된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1942년 이곳에서 태어나 80 평생을 이곳을 지키며 함께해 온 정주영씨 /김명년
1942년 이곳에서 태어나 80 평생을 이곳을 지키며 함께해 온 정주영씨 /김명년

현재 정주영 가옥에는 정주영(80)씨가 부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 가옥은 1930년대 정주영씨 아버지인 정구창씨가 결혼을 하면서 지어 슬하에 5남매를 키웠던 곳이다.

정주영씨는 "아버지가 1995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으니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110세가 되셨겠다"며 "아버지가 결혼하면서 이 집을 짓고 평생 사셨으니 이집도 거의 90년이 됐다"고 설명했다.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정주영씨는 1942년 이곳에서 태어나 80 평생을 이곳을 지키며 함께해 왔다.

정주영씨는 아버지가 사랑채에서 전국의 한학자들과 글을 짓고 글을 쓰며 수학했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옥천 출신의 최고 한학자인 임창순씨와 한학을 많이 배우신 아버지가 사랑채에서 같이 공부하셨어요. 당시에 제주도, 영·호남 한학자들도 이곳에 모여 같이 공부를 하셨어요."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사랑채에 '도헌유거'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김명년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사랑채에 '도헌유거'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김명년

사랑채에는 '도헌유거'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도헌'은 정주영씨 아버지의 호로 '도헌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뜻으로 지어졌다.

이 현판 또한 한문서예와 한글서예의 일가를 이룬 서예가인 일중 김충현 선생의 글씨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일중 선생 탄생 100년이 되는 해로 지난 6월 8일부터 7월 6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일중 김충현 탄생 100년 기념전'이 열리기도 했다.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정남향으로 들어선 안채는 장대석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방형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방형기둥을 세운 민도리집이다. 정면 5칸 반, 측면 1칸 반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구성은 중앙의 1칸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서측으로 건넌방을 두고, 동측으로 웃방·안방·부엌을 배치해 중부지역의 전형적인 민가 평면으로 구성됐다.

안채는 남향, 사랑채는 동향하고 있는 직교축의 배치로 구성돼 있다. 이 가옥은 건축 당시에는 함석지붕이었으나 현재는 기와지붕으로 돼 있어 기둥 등 부재가 대체적으로 가늘다.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정주영씨는 "지어진지 90년이 다 되다 보니 30년 전쯤 보수공사를 실시했다"며 "재래식 부엌이 있었지만 사용하기가 불편해 지금은 구조를 변경해 방으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인 한옥 구조로 잘 보존이 되고 있지만 기둥이 가늘어서 늘 이 기둥이 조금 더 두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래도 근대 가옥이 이렇게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충북 옥천 정주영 가옥 /김명년

대청마루와 안방·웃방 전·후면으로는 반 칸의 툇마루를 두었으며, 건넌방의 전면과 서측으로도 반 칸의 툇마루를 두었다. 창호는 아자(亞字)문양의 미닫이문과 띠살문양의 여닫이문으로 된 이중문으로 돼 있다.

평면구성은 중앙에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전면과 남북측의 삼면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구성이다. 또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온 100년이 다된 장식장 등도 보존돼 있어 근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도 남아 있다.

정주영씨는 "안채는 5칸으로 이뤄지고 앞 뒤에 툇마루를 둬 '5칸 전후모퇴집'으로 지어진 집"이라며 "정남향집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한옥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기장 치고 자면 에어컨이 필요 없어. 또 모두 우리나라 소나무를 사용해 지은 집으로 지금은 이런 나무를 구하려고 해도 없을거야."

이 가옥은 평면구성에서 툇마루의 기능이 확대되는 등 근대기의 전통건축기법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주영씨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늘 보고 싶어 마당에 소나무를 심었다"며 "당대 최고 한학자들이 함께 모여 수학하던 아버지의 유산이 잘 보존돼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정주영 가옥에서 200m 거리에 선조 21년(1588) 의병장 조헌 선생이 세운 조선시대 사당 후율당도 자리잡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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