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햇살 가득한 창밖으로 들어오는 상큼한 향기는 아름다운 그리움이다. 교실 밖 야트막한 화단에 심어진 라일락 향기가 허락도 없이 소녀의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왔다. 폴폴 흘리는 매력적인 향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내던 여고시절. 턱 괴고 창밖에 연분홍, 연보라, 하이얀 별꽃을 바라보다 깜박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기도 한 점심시간.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았던 소녀는 마음판에 그림을 그렸다. 가슴속에 일렁이는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꿈 이었다. 먼 훗날 내 집 앞마당에 라일락 나무를 심어 이 행복한 순간을 계속 이어가겠노라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고 적어도 그 꿈을 이룰 때까지는 충분히 자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라일락, 늘 푸른 소나무, 벚꽃의 화사함, 열매 맺는 유실수까지 나무 농장을 가지고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이 피는 정원을 가지려는 야무진 꿈을 꾸던 소녀가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었다.

즐거움이 가득한 동네 다락(多樂)마을 나의 농장에 나무를 심었다. 이름조차 예쁘고 사랑스러운'다락뜰농원'라일락, 단풍, 느티나무, 뽕나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갖가지 유실수와 꽃나무 느티나무, 겨울에도 변함없는 소나무를 가득 심었다. 사계절 꽃이 피고 지는 작은 화단까지 만들었다. 바람과 그늘 초록이 주는 맑은 공기 나무가 주는 선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 속에서 누리는 쉼괴 힐링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나무가 주는 혜택은 무한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주황색 꽃이 줄줄이 피어있는 듯한 감나무. 붉은빛 대봉이 주렁주렁 꽃처럼 피어있지만 건드리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질듯 간신히 매달려있다. 하루가 다르게 어찌 그리 잘 자라는지 사람이 나무처럼 자란다면 아마도 대책 없이 클 것이다.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대봉감을 따 먹을 수 있는 행복이 있으니 부자가 따로 없다.

나무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뛰어 놀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오면 산천은 옛 그대로 변함이 없되 곁에 있던 친구와 이웃은 간 데 없다. 하지만 나무는 제 자리에서 어른이 된 그때 그 아이를 반가이 맞이해 준다.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찾아 이리조리 오고가는 약삭빠름에 피폐해진 마음을 품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오랜 기다림이다.

나무는 아낌없이 제 몸을 내어준다. 그늘을, 열매를, 가지를, 몸둥이를, 잘려나간 밑둥마져도 잠시 쉬었다가는 의자로 기꺼이 주는 것이다. 그늘 아래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수 있게 해 주고 사춘기 소년 소녀들에겐 연두빛 푸르름과 시원한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깨워준다. 청춘들에게는 사랑의 밀어와 약속을 나누는 곳이 되어주기도 한다. 추억을 찾아오면 잘 왔다 다독여주는 큰 나무. 그 아래서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둘 수 있는 한적한 여유를 선물해 주는 바람과 그늘이 있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썩은 가지 잘라내는 아픔을 참고 더 깊이 뿌리박아 거목이 된 나무는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제 몸 썩어 가루가 된다. 그 것 조차도 또 다른 나무를 일으키고 세워주는 거름이 되어 생명을 이어간다. 나무는 숲을 이루고 숲이 사람에게 주는 산소 물 목재와 과일 대기오염을 없애주기까지 그 경제적 가치는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 무한하다. 파란 하늘이 맑은 바람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게 선물로 주어졌다. 공짜로 받는 햇살 바람 빛과 더불어 나무는 인생길 함께 동행하는 친구가 되었다. 나의 농원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한 나무 심기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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