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어릴 적 시골에는 다람쥐가 참 많았다. 집주변 다람쥐는 주로 돌담을 타고 다녔다. 다람쥐 포획은 쉬웠다. 철사로 만든 직육면체 덫 속에 북어 조각을 걸고 입구를 열어 놓은 뒤 그 덫을 돌담 위에 올려 논다. 도토리만큼이나 북어를 좋아하는 다람쥐는 덫으로 들어가 북어를 뜯어 먹는다. 순간 문이 닫히고 다람쥐는 덫에 갇힌다.

포획된 다람쥐는 쳇바퀴에서 눈요기 신세가 된다. 다람쥐가 쳇바퀴 안에서 쉼 없이 달리지만, 쳇바퀴가 돌뿐 다람쥐는 늘 제자리다. 이런데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은 언젠가는 쳇바퀴를 벗어나겠지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인간의 눈요기를 위해 쳇바퀴를 돌리지 않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다.' '발전하지 못하고 똑같은 일만 무미건조하게 되풀이하다.'라는 뜻이다. 이 속담은 드러난 의미보다 숨은 의미가 더 중요하다. 쳇바퀴 속 다람쥐 신세가 되지 말고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결단력 있게 벗어나라는 경고 말이다. 반복되는 삶이 쳇바퀴 속 다람쥐 일상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속도가 중력에 영향을 받듯 처지나 범주에 영향을 받는다.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중력을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 역시 처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인간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안주해야만 하는가? 답습이 아닌 창조적 변화를 유발할 수 있을까?

고대 이후 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딜레마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 실마리를 제공한 용어가 '클리나멘(Clinamen)'이다. 고대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우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용어로 '기울어져 비껴감 혹은 벗어남'이란 뜻이다. 학자마다 해석 차이가 있지만, 중력이나 관성에서 벗어나는 힘을 가질 때 그 힘의 성분 또는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자기조직의 유형을 생성하는 창조의 조건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부정적 탈선이 아닌 벗어남에서 창조를 잉태한다는 말이다. 현실 도피가 아닌 탈신도주(脫身逃走), 탈주의 원동력이다. 탈주는 처지 등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창조하는, 영역을 확장하는 힘이다. 적극적, 능동적인 결단력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사회는 클리나멘이 충만한 사람을 요구하지만, 국가는 테두리(?)를 설치하고 사람을 그 안에 가둔다. 국가가 포획한 사람은 국가가 소유한 백성, 국민(國民)이 된다. 국민은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와 같다. 그래도 클리나멘을 발휘해 탈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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