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명예교수

도심의 번잡함을 피해 여유롭고 한적한 전원으로 이사 온 지 1년 남짓 됐다. 자연과 벗하며 살면서 자칫 무료할 수도 있는 생활을 이겨내게 해준 게 이웃들과 함께 하는 작은 텃밭이다. 심고 거두면서 무언가를 키우는 작은 기쁨을 맛보며 산다.

그런데 일년 여가 지나니 텃밭은 단순히 농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기능적인 공간이 아니고, 무언가를 생각해고 배우는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공간이 됐다. 인생의 세 번째 라운드에서 만난 텃밭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소통의 창구다.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고 이를 돈독히 해 주는 가장 좋은 연결고리는 그것이 취미이든, 종교이든, 아는 사람 흉보기이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통의 주제가 아닐까? 그런데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오면 이 부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양한 통신수단이 발달돼 지인들과 얼굴을 본 듯이 수다를 떨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다.

그런데 텃밭을 하면서 이웃들과 소통의 주제가 만들어졌다. 특히 농사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보니 그저 농사선배들에게 묻는 것이 일상이다. 언제 어떤 작물을 심는지, 밭을 가꾸려면 어떻게 하는지, 원줄기와 아들줄기는 무엇인지, EM은 얼마나 뿌리는지? 도통 모르는 것 투성이다 보니 자연스레 묻고 배우면서 하나하나 알아간다. 텃밭을 하지 않았으면 무슨 얘기를 하고 살았을런지 가슴이 섬찟해진다.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명예교수 

작물들을 키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고, 비료와 농자재를 사고, 종자값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다 보면 때로 사서 먹는 것이 더 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웃과 소통하게 해 주고, 세상 일에 다 때가 있으니 조바심 하지 않게 하고, 또 정을 나눌 수 있으니 일석삼조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 텃밭농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장화와 빨간 장갑을 챙겨 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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