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어쩌다가 텃밭 한 쪽이 온통 망초와 익모초 세상이 되었다. 내 키와 맞먹는 놈은 물론 능가하는 놈도 있다. 정신을 차리고 해뜨기 전 한 시간을 풀과의 전쟁 시간으로 정했다. 망초는 힘들어도 뽑을 수가 있는데 익모초는 어찌나 뿌리가 튼실하고 깊이 내렸는지 내 힘으로 뽑을 수가 없다. 일일이 호미로 파헤쳐야만 한다.

지난해는 막내 동서가 익모초 구하러 왔지만 말끔한 텃밭에 어쩜 한 포기도 찾지 못했다. 그랬던 익모초가 올해는 이렇게 널브러져서 나를 힘들게 한다. 이런 저런 핑계를 일삼은 내 게으름 때문이다. 그래도 익모초는 가슴으로 어머니를 모셔오는 추억이 있다.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어느 더운 날 어머니는 파란 풀을 베어다가 돌 절구통에 찧고 계셨다. 호기심 유난하던 나는 양지로 살짝 찍어 맛을 보고 말았다. 혀는 물론 온 몸이 오므라드는 쓴맛의 기억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생생하여 진저리를 친다.

유월유두날 익모초를 먹으면 그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해마다 가족들을 챙기시지만 진저리쳐지는 시퍼런 즙을 하얀 사발에 담아서 나오시면 부르기도 전에 나는 줄행랑이었다. 후에는 익모초 베어 오시는 것만 봐도 미리 뒷동네로 간다. 저녁 먹을 시간쯤에 살그머니 들어오면 어머니는 눈신호로만 언짢게 여기심을 표현하실 뿐이었다. 그 하얀 사발을 누가 받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럭저럭 잘도 모면해서 익모초 즙을 마셔본 적이 없다.

암눈비앗이라고도 하는 익모초(益母草), 어미를 이롭게 하는 풀.

여성들의 피돌기를 활발하게 하므로 모든 부인병은 물론 젖몸살과 신장 이뇨작용까지 돕는가 하면, 경맥을 잘 조절해서 침침한 눈을 밝게 해 준단다. 부종에도 좋아 가난한 옛날은 믿어지지 않지만 만성맹장염에도 효과를 봤다고 한다. 소태 못잖은 쓰디 쓴 풀이지만 잎겨드랑이마다 층층이 돌려 달린 홍자색 꽃은 꿀이 많아 벌들이 많이 꼬이기도 한다. 들판이나 산골에도, 길가나 담 밑에서도 흔하디흔한 잡풀일망정 그 타고난 값을 하느라 꿀벌에게는 물론 세상 여인들을 이롭게 하니 그야말로 당시는 익모(益母)였다.

나는 益母草,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밑바닥부터 울림이 온다. 엄마 생각에 가슴 저린다. 그때는 어머니 손에 물든 진초록 색깔만으로도 몸을 움츠렸는데 지금은 그 색깔의 상상만으로도 쌉쏘롬한 향을 느낀다. 가슴 에이도록 그립다. 한 번쯤 눈 질끈 감고 마실 것을. 자식은 전 세상에 원수의 인연이라든가. 이로움은커녕 가슴에 못이나 박아드린 웬수같은 딸은 뻔뻔스럽게도 어머니에게 살갑게 해드리지 못한 것을 당신 닮은 성격이라고 간주해 왔다.

한 때는 세상의 다른 딸들처럼 늦었지만 후회하며 슬퍼도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툭툭 털어버린다. 자식이 행복하면 덩달아 행복한 것이 어미 마음임을 나는 안다. 때 늦었다고 손 놓고 슬퍼만 하는 것보다는 영혼이라도 기쁘게 해드려야지. 우리 9남매들이 정 도탑게 사는 모양새가 어머니의 소원 아닐까. 그렇게라도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린다는 생각을 한 쪽 가슴에 담고 오빠네, 동생네 오가며 최선을 다한다. 드러나지 않게 윤활유 역할 할 때는 뿌듯하다. 이것을 나는 익모(益母)라고 여긴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단오 날 한낮에 체취하면 약효가 더욱 좋다는 옛말을 따라 한 아름씩 베다가 엮어서 헛간 벽에 걸어 말리는 풍경은 이제 사라졌지만 무더위가 설치면 여기 시골에는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제는 먹기 좋게 환을 지어 팔기도 하니 어머님이 좋아 하실 모습 상상하며, 내년에는 유두 날 가족들에게 암눈비앗 즙 챙겨 먹여야겠다. 몇날 며칠을 익모초와 씨름을 했다. 오늘 마지막 남은 키다리까지 다 뽑았다.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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