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지구가 온난화 현상으로 점점 더워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앞마당에 연분홍 상사화 꽃대가 올라오더니 꽃이 만발 하였다. 이때쯤이면 장맛비가 억수로 내렸다. 소낙비 내리는 날 긴 다리 중중 걷어 올리고 강보에 아기를 싸안은 여인을 떠 올리게 했던 꽃이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 하여 상사화란 이름으로 불린다. 세상을 살다 보면 기구한 운명이 하나 둘이 아닌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 했던 부부가 몸에 병이 들어 고통 속에 사는가 하면, 천년을 살 것처럼 희망이 넘치고 내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패기 넘쳤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살다가 하늘나라를 가더라도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는 인생이 몇이나 될까.

어린 나이에 부부로 인연을 맺어 평생을 남편 말에 순종하며 살던 여인이 있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한국의 여인으로 으뜸가는 할머니가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을 한 남편과 대청마루에서 점심을 먹었다. 며느리와 손자까지 3대가사는 느티나무 집에 태풍이 불었다. 예고 없는 태풍은 걷잡을 수 없이 몰아쳤다.

남편 말에 절대 순종하던 그 얌전한 노인이 남편의 잔소리에 발끈해서 밥사발을 이마를 향하여 날려 보낸 것이다. 뜻하지 않은 이변에 피가 흐르는 이마를 부여잡고 기절 안한 것이 다행스러운 사건이었다.

주야장창 먹는 타령만 하는 남자가 있다. 마누라와 자식은 이것저것 챙겨주지만 배고프다며 아무것도 안준다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부모 없이 고아로 자라서 먹는데 한이 맺혔던가보다. 많이 먹고는 똥을 싸서 벽이고 냉장고에 바르지를 않나, 보다 못해 입바른 소리를 하면 때리기 까지 하는 남자다. 요양원에 보낸다고 하면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측은지심에 화가 풀린다는 아낙의 끈끈한 정이 담긴 사랑 타령은 5년이 넘었다. 아들 또한 효자 중에 효자다.

아주 얌전하게 밤낮을 앉아서 지냈다는 시어머니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잠도 앉아서 자고 쌀 두어 말 가랑의 보따리를 끌어안고 사셨단다. 쟁반에 밥을 갖다 드리면 잡수시고 밥그릇에 똥을 싸서 뚜껑을 얌전하게 덮어 내 보내는 능청맞은 행동에 며느리는 번번이 황당했다고 한다.

한방 병원 입원 환자 중에는 돈에 한이 맺혔는지 돈만 보면 조각을 내서 먹어 치우는 분도 있다. 어디다 감춰 두어도 훔쳐 간다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곳이 뱃속이란다. 그런가하면 참기름, 고추장, 고춧가루 심지어는 밭에 달린 오이며 호박 콩까지 이웃이 따갔다고 헛소리를 해서 매일 큰소리가 줄을 잇는다. 본정신으로 하는 짓이 아니고 치매라는 병마가 사람을 그리 만들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다 결국에는 환자보다 보호자가 저승길을 먼저 가는 것을 종종 본다.

예쁜 치매 환자도 있다. 아무한테나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예쁜 말만 하는 분도 있다. 그런가하면 우울증 환자인지 별말 아닌데도 징징대며 우는 사람도 있다. 치매의 종류는 수 없이 많다고 한다.

평소에 많이 참고 산다든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원인으로 병이 되어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 치매인 듯하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시대가 바뀌어 인내심은 십리 밖으로 달아나 버린 것 같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생산하지 않는가 하면 성격차이로 이혼가정이 늘어나 한 부모 가정에서 외롭게 자라는 죄 없는 아이들이 있다. 먼 훗날의 치매 환자는 어떤 모습들일까.

앞마당에 예쁘게 피어난 상사화가 오늘 따라 요염하게 다가온다. 풀벌레 소리 한창인 앞마당에 분꽃 향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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