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호씨에게 듣는 '세종시 행정수도 사수투쟁 7년사'
김일호씨에게 듣는 '세종시 행정수도 사수투쟁 7년사'
  • 김미정 기자
  • 승인 2021.08.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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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200년 역사 뺏긴 충청도 희생, 국가균형발전 결실 맺어야"
총 600회 집회·단식·삭발·분신 총동원…충청권·전국 가세
정부·국회, 9월 정기국회 이전 국회법 개정에 의지 보이길
행정수도 원안 사수 투쟁 7년사 산증인인 김일호 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 김미정
행정수도 원안 사수 투쟁 7년의 산증인인 김일호 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 김미정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세종시의 요즘 최대 현안은 단연 국회세종의사당 설치 근거를 마련할 국회법 개정이다. 반쪽짜리 행정수도로 출범한 세종시가 행정수도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2004년 10월 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촉발된 행정수도 원안 사수 투쟁 7년의 역사가 17년만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의 치열했던 정신을 되살려 오는 9월 정기국회 이전에 국회법 개정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7년여간 원안사수활동을 이끌었던 산증인인 김일호(70) 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만나 그간 활동과정과 당면과제를 들어봤다. / 편집자

 

행정수도 원안 사수 투쟁 7년사 산증인인 김일호 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 김미정
행정수도 원안 사수 투쟁 7년의 산증인인 김일호 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 김미정


"지금 6번째 위기이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요. 세종시가 있기까지 충청도민들의 노력과 희생, 투쟁이 있었는데 충청도민이 다시 힘을 모아야 해요. 정부나 국회가 의지만 갖는다면 행정수도로 갈 수 있어요. 아니, 가야 해요!."

김일호 전(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번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국회법 개정 절차를 '위기'이자 '기회'라고 봤다. 오는 9월 임시국회 이전에 개정안 처리를 기대하고 있다.
 

2004년 10월29일 조치원역 앞에서 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에 반발하는 첫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당시 연기군민 1만명이 모였다. / 비대위 제공
2004년 10월29일 조치원역 앞에서 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에 반발하는 첫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당시 연기군민 1만명이 모였다. / 비대위 제공


첫번째 위기였던 2004년 10월 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시작으로 2005년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법적 지위 축소,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후 세종시 백지화 시도 등 7년여 시간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 때마다 온몸으로 막아내고 지켜냈다. 총 600회의 집회, 158일 연속 릴레이 단식농성, 4번의 삭발농성, 분신농성, 헌재 현판 화염식 등 행정수도 원안을 지키기 위한 활동들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고 회상했다.

"정부가 국가백년대계를 실현한다고 연기군 부안 임씨 역사 600년, 연기군 1천200년 역사를 가져가놓고 이명박 정부가 약속을 안 지켰어. 후손들에게 이런 역사를 물려줄 수는 없어요."
 

2004년 11월 조치원역 광장에서 헌법재판소 현판을 태우는 화염식이 열리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4년 11월 조치원역 광장에서 헌법재판소 현판을 태우는 화염식이 열리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4년 10월 21일 헌재 위헌결정에 분노한 연기군민들은 비대위를 구성해 험난한 투쟁을 시작했다. 이후 2010년 12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 국회 통과까지 7년여동안 치열한 원안사수활동을 펼쳤다. 첫 집회였던 2004년 10월29일 조치원역 앞 1차 궐기대회에는 연기군 역사 이래 최대 인파인 1만명이 모였다. 당시 연기군 인구는 8만명에 불과했다.

"시시하게 할 거면 시작도 말자고 했었지. 조치원역에서 철도를 막자, 고속도로를 점거하자는 계획도 있었는데 사전에 정보가 새나가서 실행하지 못했어. 분신도 하고 활복까지 시도했었는데 크게 다치진 않았었지."

당시 비대위가 바르게살기운동 연기군협의회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당시 바살협 사무국장이었던 김 위원장이 비대위 활동의 실무를 총괄하게 됐다. 문학활동을 했던 김 위원장에게 각종 성명서·논평·기자회견문 작성에 회의 진행, 집회 기획 등이 맡겨졌다.

2005년 10월18일 행정수도 사수 집회가 열리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5년 10월18일 행정수도 사수 집회가 열리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5년 6월 김일호 집행위원장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에 반발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5년 6월 김일호 집행위원장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에 반발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비대위 제공


"당시 50대 중반이었으니까 가장 핵심역할인 집행위원장을 시킨 것 같아. 기자회견문도 쓰고, 유력인사들과 연락하고, 집회에 사람 모으는 일도 하고 1인3역을 한 거야. 언론인터뷰도 내 몫이었지."

첫 집회 때부터 1년1개월동안에는 총 100회 집회를 가지며 여론몰이에 치중했다. 3~4일마다 대규모 집회를 가진 셈이다. 절박함과 책임감으로 버틴 시간이었다. 조치원역 앞에서 열었던 집회는 대전역 광장, 공주 금강변, 천안 아라리오광장, 청주 등 충청권으로 넓혀갔고 2014년 12월4일 첫 상경집회를 가졌다. 연기군민 2천400명을 태운 버스만 58대가 서울 종로로 향했다. 연기군민들로 시작했던 사수활동에는 충청도민 500만명이 힘을 보탰고 이후 전국 600개 시민단체가 가세했다.

2009년 10월 연기군청 광장에서 유한식 연기군수와 연기군의원들이 세종시 백지화에 반발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4년 10월 조치원역 광장에서 황순덕 비대위 상임대표와 이진희 전 연기군의원이 단식농성을 벌고 있다. / 비대위 제공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는 2004년 11월 단식농성을 꼽았다.

"황순덕 당시 비대위원장(연기군의원)과 이진희 전 연기군의원이 16일간 단식농성을 했는데 가장 힘들었어. 목숨을 내놓은 싸움이었으니까."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세종시 수정안(백지화) 움직임이 일면서 유한식 당시 연기군수가 11일간 단식농성에 들어간뒤 사회단체별로 릴레이 단식농성을 벌여 158일간 이어진 일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조치원역 앞에선 매일 촛불집회가 열렸다.

2009년 7월30일 조치원역 앞에서 열린 세종시설치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집단삭발이 이뤄지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9년 7월30일 조치원역 앞에서 열린 세종시설치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집단삭발이 이뤄지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9년 9월 국회 앞에서 행정수도 백지화 반발 집회가 열리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9년 9월 국회 앞에서 행정수도 수정안 반발 집회가 열리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9년 10월 연기군이장단협의회가 주민등록증 반납 투쟁을 하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9년 10월 연기군이장단협의회가 주민등록증 반납 투쟁을 하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9년 10월 연기군청 광장에서 유한식 연기군수와 연기군의원들이 세종시 백지화에 반발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비대위 제공
2009년 10월 연기군청 광장에서 유한식 연기군수와 연기군의원들이 세종시 백지화에 반발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비대위 제공


"이명박 정부 때에는 정부와 맞서 싸웠고 나머지는 국회의원들과 싸웠지."

세종시에 대해선 '희생'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봤다. 충청도민들의 희생으로 건설된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세종시는 우리가(충청도민)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잖아. 최적지도, 명칭도 정부가 원하는대로 선정했고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건설했어. 충청도민들의 희생의 결과로 온 국민이 고루 잘 살았으면 바라는 거예요."

세종시 출범 9년 남짓, 인구는 8만명에서 36만명으로 4.5배가 늘었고 허허벌판에는 45개 중앙행정기관과 22개 국책·공공기관이 이전해 둥지를 틀었다. 그는 '발전상'보다 '당면한 과제'에 주목했다.

"세종시가 발전은 많이 했지. 하지만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는 기대에 못 미쳤어. 또 세종시 내 신도심과 구도심의 격차, 주민들간 이질감도 크고. 지역불균형을 해소해야 해."

그는 이달 세종시 원안 사수 투쟁 7년의 기록들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17년만이다. 세종시청에서 열리고 있는 '행정수도 사수 투쟁 기록 사진전-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함성'을 기획했다.

김일호 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자신이 기획한 '행정수도 사수 투쟁 기록 사진전'을 보고 있다. / 김미정
김일호 前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자신이 기획한 '행정수도 사수 투쟁 기록 사진전'을 보고 있다.  사진전은 이달 10일부터 31일까지 세종시청에서 열린다./ 김미정

"지금 이 사진들을 봐도 기억이 선명해. 아픈 기록이고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이지."

반쪽짜리 행정수도가 아닌 명실상부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그는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은 함성'을 외치고 있다.


 

세종시 건설 일지

2002년 9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 발표
2003년 4월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지원단 설치
2004년 8월 신행정수도 위치 선정
2004년 10월 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2005년 3월 행복도시법 제정(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
2006년 12월 '세종특별자치시' 명칭 확정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세종시 수정안 시도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 부결
2010년 12월 세종시법 제정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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