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독자권익위원회 위원

약 7년 전 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未生)'이 방영돼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드라마는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주인공 장그래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본방을 사수하지도 못했고 주위에서 추천을 해줘도 드라마에 영 관심이 없던 나는 40대 중반이 지난 2021년 뒤늦게 미생이란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되었다. 장그래처럼 인턴사원 나이가 아니지만 드라마 속 과장, 차장, 부장 나이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과 구성원들을 떠올려 본다.

어느 회차에서 장그래는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이지만 관행적으로 금기시 되고 있고 나서는 사람이 지탄을 받을 사업을 제안한다. 장그래가 속한 영업팀은 사장을 포함한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사업제안서를 발표하게 된다. 이미 반대를 하겠다는 자세로 참석한 임원들은 발상의 전환으로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설명에 수긍하게 되고 결국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기 전 사장은 인턴사원 장그래에게 묻는다. "회사에 이익은 되겠지만 모두에게 욕먹을 사업제안을 왜 했지?" 인턴사원 장그레는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 회사니까요"라고 대답한다. 순간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 회사니까…, 나의 회사니까…,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내가 욕을 먹어도 괜찮다는 그 말에 회사에 수십 년을 몸담았던 임원들은 한참을 침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애국가를 듣거나 불러볼 기회가 드물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학창시절 4절까지 외우는 시험도 보고 매일 방송, 학교에서 들을 수 있었던 애국가지만 요즘은 통 들을 수가 없다. 애국가와 마찬가지로 내 입에서 '우리나라'라는 말을 내 뱉어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다. 우리나라니까, 우리나라라서 내가 지키고 내가 발전시켜야 하는데…. 이젠 우리나라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극심한 양극화로 '그들의 나라'와 '헬조선'으로 나뉘어 졌고, 이념 노선과 좌우 대결로 '저쪽 나라'와 '이쪽 나라'로 쪼개졌다. '우리나라'가 실종되었다.

장그래가 말했던 '우리 회사'는 어떨까? 회사의 주인이 오너(owner)라면 나머지는 종업원들이다. 그의 회사에서 일하는 종업원 중의 한명일 뿐이다. 회사가 어려울 때 자발적으로 월급을 반납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회사가 망하든 말든 내 월급이 깎이면 안 되고 회사가 어려우면 기를 쓰고 다른 회사로 옮기면 그만이다. '우리 회사'는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그들의 회사'와 '스쳐 가는 회사'로 나뉘어 졌고, 학연·지연으로 '저쪽 라인'과 '이쪽 라인'으로 쪼개졌다. '우리 회사'도 실종되었다.

김영식 독자권익위원회 위원
김영식 독자권익위원회 위원

'우리나라', '우리 회사'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요즘 한창 여야 대선후보들이 '이 나라를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떠들어 대고 있다. 그런데 다들 '그들의 나라', '저쪽 나라'는 안 된다는 말뿐이고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갈 지도자가 필요하다.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들이 '내 회사 내가 지키겠다'고 나설 수 있도록 솔선수범 할 수 있는 CEO가 필요하다. 2022년 '우리나라', '우리 회사'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