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아기가 한 집의 가족 구성원으로 태어나 성장하고, 학교 가고, 사회 안에서 뿌리를 내려 안착해서 사는 것은 그 아기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관점에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 누군가는 할머니·할아버지, 부모가 될 수도 있고 형제 또는 자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누군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바라봄을 통해 성장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니 우리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편이셨지만, 경로당에 다녀오시면 나의 고사리 두 손에 사탕을 한아름 주셨던 게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내리사랑을 그때는 몰랐지만, '아, 그때 그랬었지!' 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근래에 내가 20대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린 건 집안에 경사가 생겼기 때문이다.

20살 때부터 서울에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학업과 취업도 척척 해낸 여동생이 이제는 30대 후반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씩 청주에 내려와 있다 갈 때면 뭔가 말하지 않아도 힘들고 지친 느낌이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회사가 청주에도 지사가 있으니 다 정리하고 내려와서 가까이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올해 초, 가족들에게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카인 나의 딸 아이에게는 청주에 올 때마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는데 반전을 선사해줘서 조카는 마음이 많이 상해버렸지만, 아이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그래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여동생이 결혼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그 다음에는 코로나라는 복병이 있었다. 상견례부터 007작전을 펼쳐야 했다. 남편과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약속 장소까지 모셔다 드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상견례의 경우 8인까지 허용이 되나 혹여나 하는 마음에 상견례 자리에는 같이 하지 않았다. 상견례가 끝나고 양가 어머님들 혼주 한복을 미리 입어보러 가셨다.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하루에 두 가지 일을 모두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한복점에서 헤어지는데 남편과 나는 그저 먼 발치에서 예비 사돈 어르신들에게 인사만 드려야 했다.

그리고 8월이 되자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수도권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결혼식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청첩장을 모바일로만 만들어 놓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코로나 이후에도 가장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모습 중에 송두리째 바뀐 것이 우리의 경조사 문화다. 예비 신랑, 신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했고 폐백 등 많은 것들을 간소화했다. 결혼해서 미안하다는 뜻의 '결송합니다' 라는 신조어도 생겨났고 코로나는 예비 신혼부부의 애를 태우게 했다. 그렇지만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우리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코로나가 범접할 수는 없다. 예비 신부가 환하게 웃는 결혼식의 모습을 상상하며 여동생이 건강하고 지혜롭게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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