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재영 충북도 재난안전실장

35℃를 오르내리던 날씨가 한풀 꺾였다. 폭염주의보와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던 게 엊그제인데 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피하지 못할 숙제가 하나씩 생긴다. 그 숙제는 바로 벌초다. 벌초는 조상의 묘를 깨끗이 유지하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는 세시풍속이지만 벌초로 인하여 이맘때면 웽웽거리는 예초기 소리가 온산을 뒤덮는다. 뜨거운 날씨에 벌초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온몸은 땀범벅에 어쩌다 벌집이라도 건드리면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조상 섬김을 전통으로 지켜온 우리 민족에게 벌초는 연중행사의 하나다. 벌초를 게을리하면 이웃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최근 불어 닥친 코로나19의 폭풍이 이런 전통마저 흔들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로 문중이 모이는 벌초 행사가 차질을 빚게 됐다. 최근 코로나19 감염 양상이 무증상에 전파 속도가 빠른 변이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심상치 않다. 가족이나 지인 간 전파로 거리두기 단계 장기간 격상에도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2천 명을 넘는 등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방역 당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벌초 모임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 부응하여 작년에는 일부에서 벌초 모임을 스스로 자제하는 플래카드까지 내걸었었다.

'얘들아! 이번 벌초는 아부지가 한다. 너희들은 오지 말고 편히 쉬어라잉~"

'삼춘! 이번 벌초 때는 내려오지 맙써!'

벌초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부모 마음이 구수한 사투리에 묻어나 웃음을 준다. 삼촌의 미안한 마음을 덜어주려는 조카의 마음도 물씬 전해진다.

요즘은 벌초 대행 서비스가 생겨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일정액을 송금하면 이발사가 머리를 깎듯이 산소를 말끔히 정리해 준다. 벌초를 끝나고 친절하게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준다.

충북도는 정부의 거리두기 연장방침에 따라 현재 강화된 거리두기 3단계를 9월 5일까지 2주간 추가 연장으로 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로 공연장 200명 이상 집합 금지, 공원·휴양지 등에서 야간 야외·음주 금지, 실내체육시설·학원 등 24시 이후 운영금지, 22시 이후 편의점 테이블 의자 이용 취식 금지, SSM(수퍼수퍼마켓) 출입자 명부 작성 의무화 등의 조치를 강화했다. 거리두기 연장으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자칫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최근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특히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각지에서 벌초를 위해 일가친지들이 모일 경우 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 벌초 모임이 지역 내 감염확산의 연결고리가 될 경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쓸쓸한 추석이 될 수 있다.

'아범아!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마음만 보내라'.

'얘들아! 이번 추석에는 안 와도 된다. 영상통화 OK!'

작년 추석 때 걸려 있던 문구들이다. 코로나19가 추석 명절에 자식과 손주의 귀성길을 바라보는 고향의 정서까지 바꾸어 놓았다.

'불효자는 옵니다'

이재영 충북도 재난안전실장
이재영 충북도 재난안전실장

작년 추석에 걸려 있던 이 문구는 서글픔마저 들게 했다. 지금 코로나19 상황이 그 어느 때 보다 엄중하다. 4차 대유행의 바람이 거세다. 그동안 우리는 굳건히 코로나를 극복해왔다. 슬기로운 벌초의 일환으로 올해도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기고 성묘도 시간대를 분산하여 다녀오시기를 부탁드린다. 정부는 지난 22일 기준 전 국민의 52.7%가 코로나19 1차 예방접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도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조만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인내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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