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동빈 사회경제부 차장

유서가 세상에 나오기 전 '청주 계부 성폭행 사건' 피고인은 성범죄에 대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이로써 유족들은 다음 재판에서 계부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주장을 지켜봐야할 처지에 놓였다. 그 근거로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무언가가 준비될 것이 자명하다.

결국 유족들은 거리를 나왔다. 피해 여중생 A양(의붓딸 친구)이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 아버지는 호소문을 읽었다. 피해사실을 증언할 피해자가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 사건의 전환점이 되는 A양의 유서가 발견된다. 유족들은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알려야겠다는 판단 하에 유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나쁜 사람은 벌 받아야 하잖아 그치?" A양의 유서에 담긴 글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른 계부에 대한 처벌 가능성에 물음표를 찍었다. 표현이 많이 서툰 딸은 가족들에게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2장의 편지지에 담았다. '너무 아팠다'는 반복된 표현으로 성범죄 피해의 고통을 알렸다. 그렇지만 끝까지 처벌은 확신하지 못했다.

피해자가 죽어야 입증되는 혐의. 최근 성범죄 피해자가 잇따라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반복되면서 사용되는 표현이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리는 피해자는 A양과 같은 미성년자이거나 집단 내 약자로 대변되는 이들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로 부실한 시스템이 지목된다. 각종 제도와 절차가 피의자의 권리에 주목하는 사이, 그들보다 힘이 약한 피해자들은 서서히 죽어간다.

신동빈 사회부 기자
 신동빈 사회경제부 차장

청주 계부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 지역에서는 아동에 대한 성범죄 대응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법 계정 논의에 들어갔다. 유족들은 법 개정을 통해 다시는 딸과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범죄자의 처벌에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A양의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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