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승희 충북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 소장

여권통문, 3.8세계여성대회는 최근 몇 년 동안 외부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이다. 우리의 선배들이, 언니의 언니들이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하여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었다는 것을. 말이 백여 년 전이지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녀차별의 벽에 부딪혀 여성 인권은 물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답답해지는 일이다. 1900년대 말 이 땅에서 여성들 스스로 권리를 인식하여 교육받을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 정치적 참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담대히 세상과 맞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였을지 알기에 리소사, 김소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참정권을 위하여 고군분투한 여성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속에는 '서프러제트(여성참정권운동자)'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테러리스트로, 정신병자로 강제 입원을 당하는 등 사회와 가족에게 배척당하지만 여성들의 권리 찾기를 위한 참담한 여정이 자주 묘사되고 있다.

이주배경을 가진 여성들 중에는 구)소비에트 연방국가에서 나고 자란 이들도 있고, 사회주의 배경을 가진 국가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이 꽤 있다. 결혼이민자들의 경우에는 중국, 베트남, 몽골, 구)소비에트 연방국가인 중앙아시아의 ○○○○스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많은 편이다. 배경이 그러하다보니 '3.8여성의 날'이나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해가 높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인 배우자와 나이차가 많고, 남편들의 연령대가 높다보니 가부장적인 사람들이 많고 그 주변 가족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중개업자에 의한 매매혼적 요소가 높다보니 '여성으로서의 권리나 존중'보다는 뭔가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대함으로써 발생하는 가정폭력, 가족폭력의 비율이 높다. 경제적 동기가 국제결혼으로 이어져 입국하게 되었는데 실제 상담에서 보면 남편이 생활비를 안준다는 경제적 폭력 피해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언어, 문화, 정서적으로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돈벌이'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 빠르게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내몰리는 여성들이 많다.

남편이 사망했음에도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가족들의 요구대로 서명하고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다보니 체류에 문제가 생기고 상속에서도 밀리고, 성추행에 저항하느라 손사레를 치다 상대방 얼굴에 할퀸 자국과 작은 멍이 때문에 고소를 당하는 여성들도 있다. 국내에 체류하는 여성들의 체류비자는 다양하다. 결혼이민자(F-6). 노동자(E-9), 학생(D-2), 강사(E-2), 동포(F-4), 거주(F-2), 난민(G-1) 등등. 그러나 성희롱예방교육이나 인권교육을 받고 체류권을 받는 경우는 노동자, 결혼이민자 정도로 여성들이 성적자기결정권이나 피해발생시 권리구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피해당사자인데 어떻게 경찰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하고, 성추행이 발생했는데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정말 억울하고 힘들었다고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여성들도 있었다.

정승희 충북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 소장
정승희 충북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 소장

2021년 9월 현재 다양한 정보체계가 꾸려지고는 있으나 이주여성들은 코로나 19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 재난에 대한 각종 정보와 지원에서 밀리며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 돌봄에 대한 지원이나 장기간의 휴교 상황에서 학교 교육에 참여시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였다. 이주배경을 가지지 않아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나이, 경제적 지위에 따라 정보를 획득하거나 균등한 기회에 참여하는 것이 결코 녹녹하지는 않다. 그러나 태생이나 언어,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차별 없이, 구별 없이 선배들이 '여권통문(女權通文)'을 통하여 열망했던 바로 그 권리를 누리며 인간답고 자주적인 삶을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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