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사람은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누군가를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만나면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고, 공허감으로 기진맥진해지는 사람이 있고, 우울한 감정이 올라와 기분이 나빠지고 의욕이 꺾이는 사람도 있다. 감정의 전염성은 강하여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감정이 내 감정을 자극하고 내 삶에 깊게 파고든다.

관계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의 상호작용으로 맺어진다. 누구든지 관계를 통해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정을 주고받는다. 관계에서 긍정적인 인정을 주고받는지, 부정적인 인정을 주고받는지는 어릴 적 양육자와의 관계 맺기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심리치료사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언어적으로나 비언어적으로 애정 어린 인정 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인정 자극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살면서 인정 자극을 박탈당하면 존재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여져 불편한 심리에 압도당한다.

스티븐 카프먼은 역기능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메커니즘을 피해자, 박해자, 구원자의 역할로 설명했다. 누구나 상대방과 상황, 그리고 어린 시절에 경험하여 친숙한 관계의 메커니즘에 따라 피해자, 박해자, 구원자의 역할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관계가 이해관계의 충돌과 욕구 불만으로 불편해도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감하고 살아가는 이유를 느끼게 되면 익숙해진 관계의 메커니즘을 유지하게 된다.

K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피해자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매사 징징대고 남편과 타인에 대한 비난에 익숙해져 있다.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인과 책임을 남편에게 전가시킨다. 딸에게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보이며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라는 말로 동정심과 연민을 자아낸다. K는 피해자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도록 도발하고, 죄의식을 자극시킨다. 피해자 역할을 하며 사는 엄마를 지켜보는 딸은 심리적으로 힘이 든다.

A는 부인과의 관계에서 박해자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부인에게 욕구 불만을 분출하며 나쁜 감정쓰레기를 해소한다. 그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신경질과 화를 잘 내고, 가족들을 강박적으로 통제한다. A는 타인에게는 너그럽고 관대하지만 가족에게는 협박, 위협, 폭력을 수시로 휘두르며 상처를 준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공격하면서 자기 우월감을 느끼는데 익숙해져 있다.

L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구원자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피해자인 엄마를 구원하는 역할을 하며 인정 욕구를 채운다. 그는 엄마가 부탁하지 않은 일도 스스로 알아서 도와주며 보호자 역할을 할 만큼 이타적이다. 그는 "내가 어머니 때문에 무슨 일까지 했는데"라는 말들로 어머니의 죄의식을 조장한다. 그는 엄마를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만들고, 삶의 중심에 엄마가 있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관계가 피해자, 박해자, 구원자의 역할로 맺어지게 되면 삶이 고단해진다. 관계는 고착화되고 내재화되어 자신이 어떤 관계의 메커니즘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이고 역기능적인 관계 메커니즘을 긍정적이고 순기능적인 관계 메커니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관계 메커니즘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자신의 삶을 타인이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도록 삶의 경계선을 확고하게 지키고, 자신이 감당할 몫에 대한 삶의 책임감을 고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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