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저는 '애플이'에요.

저는 아이언 맨이나, 중세시대 기사들의 멋진 투구처럼 황금빛 얼굴을 가졌답니다. 이마부터 코를 거쳐 눈을 제외한 위 얼굴을 가릴 수도 있고, 입을 뺀 볼과 턱을 부드럽게 감싸 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남녀노소, 시대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젊어지고 예뻐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났답니다.

작년 한 해를 기억하시나요? 봄꽃들이 막 얼굴을 내밀 즈음 느닷없이 찾아온 봄 냉해, 54일간이나 지속되었던 지루한 장마, 결실의 시기에 사정없이 몰아닥친 거친 태풍, 기후는 앞으로 더욱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해지고 있어요. 물론 이 모든 일들이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환경을 훼손한 결과이겠지요.

봄꽃들이 앞다투어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저도 예외 없이 장미꽃에 은은한 찔레 향기를 더한 하얀 꽃을 피웠답니다. 겨울은 혹독했지만 저는 풍성하게 꽃을 피웠고 곧 튼실한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며 열심히 나비들을 불러 모았어요.

왕사탕만한 연두색 열매로 자랐을 때 안타깝게도 많은 제 친구들은 더 좋은 열매를 위해 적과 되었어요. 다행히도 저는 5월과 6월의 햇살을 담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두 달 가까이 햇빛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거든요. 오랜 빗속에서도 저는 끈질기게 버텨내었어요. 긴 장마가 걷히고 그래도 9월의 햇살은 저를 살찌게 했고 제 몸은 붉은빛과 단맛을 더해갔어요. 아,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아요. 우리나라를 강타한 세 번의 태풍, 과일나무의 전염병이라고 불리는 과수화상병에 저는 더이상 버틸 힘을 잃어버렸어요. 저는 그만 떨어져버린 낙과가 되어버렸지요. 뿌리째 뽑힌 나무도 있고 다 자란 열매가 무더기로 떨어져내려 상품 가치를 잃은 사과밭은 붉은 눈물의 바다였어요. 저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던 주인아저씨의 낙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저는 그대로 땅속으로 묻혀버릴 처지가 되어버렸지요.

그런데 그런 저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어요. 적과된 애기 사과나, 출하를 앞두고 저처럼 낙과된 사과의 성분과 효능을 추출해 저는 '애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교통대 환경공학과 교수님과 충북대 농업생명 환경대학 종이학과 교수님, 그리고 충주농업기술센터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시작했지요. 드디어 저는 충주사과의 향기와 성분이 듬뿍 들어간 마스크팩으로 재탄생되었답니다. 저의 탄생으로 충주 사과 농가에도 큰 도움이 되었지요.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사람들은 지금 필(必)환경시대에 살고 있어요. 사람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무분별한 생활을 계속해간다면 지구는 사람이 아닌 쓰레기가 주인인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넘쳐나는 물질,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 이제는 무조건 새 물건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한발 물러나 보는 건 어떨까요? 버려지는 쓰레기는 돈이고, 자원이고, 에너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버려지는 물건을 다시 돌아봐야합니다. 자원의 생명을 늘리는 일을 함께해보아요. 물건을 버리기 전 그 물건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거나 용도를 변경해보면 또 다른 제품이 탄생 될 수도 있거든요. 재활용(Recycle)을 업그레이드하면 업싸이클(Upcycle), 즉 새활용이 된답니다. 땅속에 묻혀버릴 뻔한 천연폐기물 충주사과가 '애플이' 로 새롭게 탄생하여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요. 애플이는 아름다운 피부는 물론이고 건강한 자원순환의 길을 열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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