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인가
나이 탓인가
  • 중부매일
  • 승인 2021.09.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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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오계자 보은예총회장·소설가

자고나면 하늘이 뼘씩 높아진다는 초가을에 일을 저질러 놓고 행복과 걱정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뒷문 열어 귀요미들을 살폈다.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아가들이다.

올해는 김장채소 안 심겠다고 생각 해놓고 조합원들에게 무상 배부하는 배추모를 사양 않고 덥석 받아버렸다. 그늘에 모종을 모셔두고 부리나케 읍에 다녀왔다. 우선 이랑을 만들어 방금 사온 퇴비를 듬뿍 뿌려주고 삽으로 뒤집어 묻었다. 토양 살충제를 이랑에 뿌리면 배추가 흡수할까 염려해서 이랑 사이와 밭 주변 땅에 뿌렸다. 해마다 비료를 하지 않는 대신 퇴비를 많이 한다. 살충제 대신 소주를 스프레이 하는데 올해는 푸른 은행잎을 따다가 방금 물에 담가 두었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은행잎의 악취가 벌레 퇴치작용을 한단다. 물 대신 소주로 우려내면 퇴치제가 아니라 살충제가 된다고 한다. 망설이다가 소주도 두병 부었다.

묻어 준 퇴비를 뜸들이겠다고 며칠 모종을 심지 않고 두려고 했더니 밤사이 비가 좀 많이 왔다. 때맞춰 주는 하늘에 고마워하며 비 그치자마자 비닐을 씌웠다. 풀 때문에 비닐 씌우는 줄 알고 풀은 뽑아주지 뭐 하면서 그동안 한 번도 비닐을 씌운 적이 없는데 수분 유지를 위해서라니 잽싸게 비닐도 사온 거다. 며칠 더 두고 싶었지만 모종이 얼른 옮겨달라고 난리다. 어쩔 수 없이 난생 처음 비닐을 뚫어가면서 모종을 심었다. 심어 놓고 계속 비가 오다마다했다. 또 내다보고 또 내다보고 뒷문이 닳도록 내다봐도 귀여운 것들 싫증이 안 난다. 자고 나면 어제보다 더 자랐고 또 자고나면 더 자랐다고 만세를 한다. 3일 째 되는 날이다. 비는 완전히 그치고 안개가 어찌나 짙게 내렸는지 뒷산도 안 보인다. 이를 어쩌나 오늘 햇살이 엄청 강할 것 같다.

9시가 지나면서 안개는 사라지고 태양의 세상이 되었다. 또 내다보고를 되풀이 하던 중 11시가 가까워 오자 만세 하던 아가들 팔이 하나 둘 쳐지기 시작 했다. 태어나서 처음 맞는 햇살이니 힘들 거다. 하늘이 돕는다. 점심때쯤부터 구름이 모였다가 잠시 벗었다가 하더니 구름이 우세하다. 저녁때부터는 아기들이 다시 생기가 돈다. 이렇게 햇살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는 게다.

꽃모종을 심어 놓고도 이렇게까지 애착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작품집을 엮을 때도 이렇게까지 정성 기울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책을 내면서 어떻게 처삼촌 벌초하듯 하세요?" 가까이 지내는 문인의 말이다. 그런 내가 좀 전에도 다시 만세 하는 귀요미들이 신기해서 귀요미들 곁에 앉았다가 들어왔다.

이젠 살짝 다른 걱정거리가 싹트기 시작한다. 정확하게 50포기다. 스무 포기 정도는 틈틈이 소비한다손 치더라도 나머지는 누구를 주느냐가 문제다. 시대의 변화 중 하나가 집집마다 김장철이 되어도 김장배추를 반기지 않는다. 절여서 씻어줘야 못이긴 척 받는다. 아우르느라 나도 이제 전 같지 않아 그렇게까지 베풀기는 버겁다. 딸네는 해마다 서울 시댁에서 밑반찬과 김치를 보내시니까 내 솜씨는 얼씬도 못한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오늘 평소 속정 주고 지내는 수필가 아우님과 고복 저수지를 산책하다가 "나는 김장을 여유 있게 해 놓고 1년 내내 먹어요. 봄에도 여름에도 따로 김치 안 담그고 김장 김치 먹어요." 그 말에 걱정 하나가 훨훨 날아갔다. 내가 그 생각을 못한 것이 아니라 담그는 일이 겁이 났던 것이다. 젊을 때는 김장을 접반씩도 했지만 이젠 열 포기도 겁이 난다. 그땐 넉넉하게 건건이 장만을 할 수 없는 형편에 일 년에 기일이 명절 포함해서 열 번이라 뒤꼍 그늘진 쪽에 묻어 둔 여러 개의 김장독이 든든했다. 어머님께서 이대로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문중에 알리고 대 개혁을 하셨다. 지금은 할아버지 내외분과 아버님 그리고 남편만 모신다. 손님 치를 일이 줄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생글거리며 한껏 만세를 하는 귀요미들 앞에서 스무 포기도 많다고 김장 많이 할 걱정을 하고 있다. 이렇게 행복과 걱정의 기복이 심해진 것이 나이 탓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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