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풍경
연남동 풍경
  • 중부매일
  • 승인 2021.09.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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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살아가면서 나이 들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몸의 변화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통증이나 생활의 불편함이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아서 두렵고 서글프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코가 불편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타고난 미련함과 병원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결국 서울 큰 병원까지 내원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수술 없이 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이 진료 끝날 때까지 긴장한 엄마의 곁을 지키더니 엄마의 기분전환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올라올 때마다 매번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쓰는 아들이 찾아낸 곳은 홍대 근처에 위치한 연남동이었다. 별칭으로 연리 단길 혹은 연트럴파크라 고도 불린다는 곳. 젊은이들의 성지 같은 핫한 동네에서 젊은 기운도 받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색깔을 내는 모습도 느껴보라고 했다.

연리단길은 젊음의 거리답게 각양각색의 젊은 층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고 외국인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사람 없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내 기준으로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생각되었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없었던 편이라고 한다.

개성을 뿜어내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손금처럼 펼쳐져 있는 골목에는 가정집을 개조한 상가 도시의 공간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톡톡 튀는 간판들 사이를 비집고 도보투어를 하다 보니 목도 마르고 쉬어가기도 할 겸 아들이 검색한 찻집을 찾았다.

5층까지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아들과 함께라서인지 힘들지 않았다.

커피숍이 아닌 찻집을 찾은 이유는 따뜻한 차로 몸을 다스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아들의 배려였다.

찻집에는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고 아들과 나는 2층으로 올라가 각각 다른 차를 주문하였다. 전통 찻집과는 아주 다른 음악과 실내장식이 마치 퓨전음악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것 또한 젊은 사람들의 문화려니 생각하며 즐겼다.

테이블 가운데 다관과 숙우 그리고 찻잔 두 개를 세팅해 주면서 두 종류의 찻잎을 우려 마시라고 한다. 살짝 불편한 기색을 눈치챈 주인은 하나 더 세팅해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그래주면 고맙겠다는 나의 답변에 다관과 숙우가 하나 더 세팅되었다. 그제야 편안함을 찾은 나는 내가 시킨 찻잎도 우려내며 아들이 주문한 것과 번갈아가며 차 맛을 음미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아들과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고맙다는 말도 했다.

찻집을 나오려는데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주인이 뒤따라 나오며 묻는다. 그러자 혼자 꿀꺽 삼키려던 말이 넘어가지 못하고 탁구공처럼 툭 튀어나왔다.

"한 개의 다관에 두 종류의 찻잎을 우려내어 맛보라고 하는 것은 차의 깊은 맛을 음미하기 어렵네요. 주문하는 사람 수대로 각자 세팅해 주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너무 작고 앙증맞은 다관이라 진한 향을 가진 찻잎은 반만 우려내어 마셔보고 더 넣어도 좋겠다는 안내를 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젊은 주인은 두 손을 모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면이 늘 고민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문화에 들어온 내가 먼저 왈가왈부했다면 꼰대 짓이라고 하겠지만 묻는 말에 대답해준 그날의 나는 꼰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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