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독자권익위원회 위원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지 올해로 10년이 되는 해이다. 임용 초기 원로 교수님 한분이 맹자님 말씀이라며 나에게 하신 말씀이 '학불염(學不厭)교불권(敎不倦)'이다. 배움을 싫어하지 않으며, 가르침을 권태로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교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그다지 와 닿지 않은 조언이었다. 매학기 수업준비 하느라 정신없었고, 박사학위는 있다지만 전공분야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 였던 나에게 싫어하고 권태로워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짜 교수로 시작한 나는 조교수에서 부교수가 되고 이제 10년째 접어든 중견교수가 되었다.

한 해 한 해 같은 과목들을 가르치면서 요령도 생기고 수업준비도 손쉽게 할 수 있을 만큼 강의 경력이 쌓였다. 전공분야 연구도 남들이 했던 얘기 살짝 달리 하면서 연구실적만 양적으로 늘려가는 소위 '기술자'가 되었다. 어느 순간 고작 10년도 채 교수생활을 하지 않은 내가 '대학에서 수업만 없으면 천국이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고 있다. 가르침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원로 교수님이 나에게 하셨던 '학불염(學不厭)교불권(敎不倦)'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교수들의 로망인 연구년을 갖게 되었다. 교수 경력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부터 조바심이 들었다. 그 동안 미루어 왔던 번역작업을 시작했고, 최신 연구방법론을 배우기 위해 동영상 강의도 수강하면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연구년 기간임에도 학과 교수들을 설득해서 교과과정을 새롭게 개편하고 먼저 나서서 새로운 교과목을 여럿 맡았다. 그렇게 나의 연구년은 '학불염(學不厭)교불권(敎不倦)'을 서재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 놓고, 자기 혁신을 위한 변화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2021년 1년 만에 학교에 복귀하고 새 학기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가르치는 내용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방식도 고민해야 했다. 새로운 과목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가르칠까 고민하면서 매 시간을 준비하고, 화질과 음량을 생각하면서 매 시간 방송녹화 하듯이 첨단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권태로울 틈이 없었다. 오히려 뮤지컬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된 것처럼 가슴이 쿵쾅 거리는 한 학기였다. 2학기에도 새로운 교과목을 위한 강의 준비로 매주 분주하게 보내면서 일종의 '설레임'을 느끼며 초짜 교수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다. 한편, 학기 초부터 공대 교수들과 융합연구를 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식견을 넓혀가는 일도 교수생활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 전공분야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찾게 되었고 새로운 배움에 대한 의욕을 갖게 됐다.

배움을 게을리 하고 가르침을 권태로워 하던 나의 교수생활의 위기를 절반 정도는 극복한 것으로 자평한다. 지금도 위기탈출 중이다. 교수 개인인 나 자신의 위기와 별개로 4년제 지방 사립대인 내 직장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2021학년도 신입생을 다 채우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고, 앞으로 더 줄어드는 학생수를 고려하면 상황은 나아질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얼마 전 2022학년도 신입생 수시모집이 마감되었는데 상황은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방대학의 위기탈출을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다시 '학불염(學不厭)교불권(敎不倦)'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대학 입학 정원보다 학령인구수가 적은 상황에서 대학들의 정원감축, 통폐합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래도 내 직장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학생들이 우리 학과, 우리 대학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4년제 대학간판을 달고 학위장사로 학생들의 선택을 기다릴 수는 없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다.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들로 꿈에 도달 할 수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아 볼 수 있고 무수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공급과 수요가 역전이 된 상황에서 대학은 마냥 학생들을 기다릴 수 없다. 이들에게 와야 할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고등교육기관의 근본적인 역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통적인 대학 교육과정과 교육방식은 나 같은 교수들도 배움을 싫어하게 만들고 가르치는 것을 권태롭게 하는데 신인류인 고등학생들은 오죽할까? 이제 대학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할 신인류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교육과정과 신인류인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교수들은 변화된 교육환경에서 새로운 교수자로 변신해야 한다. 상아탑에 갇힌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의 '지식큐레이터'로 거듭나야 한다.

김영식 독자권익위원회 위원
김영식 독자권익위원회 위원

대학의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대학의 종말은 아니다. 교수 개인의 위기를 '학불염(學不厭)교불권(敎不倦)'이라는 옛 성인의 가르침으로 탈출했듯이 이젠 대학의 위기탈출의 시간이 되었다. '변화를 싫어하지 않으며 교육서비스를 게을리 하지 않는 대학'이 살아남는 시대이다. 맹자님이 살아 계신다면 작금의 대학들에게 "변불염(變不厭)봉불권(奉不倦)"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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