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아침이면 소슬한 바람이 두볼에 스친다. 바람결에 옷자락이 나플된다. 바람맛이 제법 상쾌하다. 길가의 가로수 잎사귀도 여름날의 짙초록에서 어느새 엷은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 입곤한다. 어디 그뿐이랴 밖의 들녘에는 황금색으로 물든 벼 익는 소리가 물씬 풍긴다. 하마 군데 군데에는 벼를 베어 자리가 비어있다. 조금은 야속하다. 오래같이 있으면 좋으련만 뭐가 그리 급해서 자리를 비웠는지 말이다. 이렇게 날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에 며칠전 가을비 같이 않게 비가 내렸다. 실은 아침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아침에는 잔뜩 구름이 끼였지만 금방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아 시내있는 모 은행에 볼일이 있어 승용차로 10분정도의 가까은 거리라 운동삼아 편한 복장을 하고 걷기로 했다. 시내에 나와 사람들의 활보하는 모습을 보니 삶의 용기를 갖게 한다. 속으로 그래, 이거야, 사는 것이 별거드냐, 직접 대화를 나누지는 못해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체취를 맡으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 걷는 것, 참, 좋네, 아는 분을 만나면 주먹으로, 목례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니 이거야 말로 삶의 재미네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이렇게 걸어서 은행에 도착하여 한참동안 업무를 마치고 나갈려고 하는 데 갑자기 소나기처럼 비가 세차게 내린다. 하는 수 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라고 있는 데 알지도 못하는 청원경찰 아저씨가 와서, "고객님, 비가와서 가시기 어려우신 모양인데 여기 우산이 있습니다. 좋지는 않지만…"하며 하얀색 비닐 우산을 나에게 권하며 "고객님, 쓰고 가세요"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 나는 "아닙니다, 바쁜 일도 없구요 곧 비가 그치겠지요, 기다렸다가 비가 그치면 걸어서 가면 됩니다"라고 하니 청원경찰아저씨는 "아닙니다. 부담갖지 마세요, 어서 쓰고 가세요"하며 또 권한다. 다시거절하면 예의가 아닌것 같아 "그럼,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내일 갖다 드리갰습니다"하니 "아닙니다. 그럴필요 없습니다. 제 우산입니다. 어서 가세요"하며 청원 경찰 아저씨는 자리를 뜬다. 고마움마음으로 우산을 쓰고 걸어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음,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야, 남아 있어, 정과 배려가 말이야 하며 걸으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다음날 찾아가 청원경찰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어제 잘 쓰고 간 하얀 우산을 되 돌려 주었다. 그러자 청원경찰아저씨는 이렇게 안하셔도 되는데요, 우산은 왜 가져오셨어요 제것을 쓰시라고 드린건데 하시며 오히려 나보다 더 미안스레하셨다. 그제서야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며 전화연락처를 나누고 담소를 나눈후 그 자리를 떠야했다. 그후 나는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물으며 서로 살갑게 지내고 있다. 물론 지인들을 만날기회가 있으면 모 은행이 매우 친절하며 특히 청원경찰 아저씨가 최고의 매너를 갖추신 훌륭하신 분이라고 선전 아닌 선전(?)을 하곤 한다.

그후 나는 은행갈 일이 있으면 왠지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은행에 대한 업무도 업무지만 그 청원경찰 아저씨를 생각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러면서 나도 오늘 누구에게 작은 배려를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 드릴까 하면서 하루의 삶을 열어간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랗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서로 배려를 하면서?살아가야 한다. 무릇 배려란 '配(짝 배), 慮(생각할 려)'의 의미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그 뜻은 짝처럼(配)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慮)는 의미이다. 세상이 따뜻하고 살아가는데 고마움을 느끼려면 상대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 보여진다. 남으로 부터 배려를 느끼고 또 역지사지의 마음이 있어야 본인도 남에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참으로 한사람의 작은 세심한 배려가 상대방을 감동시켜줌은 물론 그 인연이 삶의 맛과 멋을 그려내는 향기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사회는 조금은 더 행복질 것이다. 불현 듯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 메난드로스가 역설한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오는 배려다 라는 그 말이 오늘따라 가슴을 저미어 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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