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이름으로
부부라는 이름으로
  • 중부매일
  • 승인 2021.10.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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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애경 수필가

백신접종 완료라는 명목으로 2년 만에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마스크로 반쯤 가린 얼굴 속에서도 세월이 비껴가지 못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그 또한 반가웠다. 함께 잘 익어가고 있다는 동질감으로 여겨졌기 때문일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시간 만큼 밀린 이야기도 많았다. 코로나 일화로 시작된 화제가 아파트로 시세차익을 봤다는 성공담으로 이어지며 슬그머니 싸매 두었던 자랑거리들도 마무리됐다.

'복도 많다!' 맞장구를 쳐 주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내심 모임에 간 걸 후회하면서 집에 들어섰다. 남편을 위해 차려놓고 간 밥상이 깨끗이 치워지고 설거지까지 되어 있다. 젊은 날은 설거지 한번 해 준 것으로도 며칠씩 공치사를 남발했다. 그랬던 사람이 짐짓 모른 척 한발 물러서서 멋쩍은 듯 딴청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투덜대며 돌아온 마음이 살짝 후회됐다. 아니 감동 그 자체였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림이지만 삶의 질곡 끝에 얻은 풍경이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일상이다.

얼마 전, 낯선 병마가 남편을 덮쳤다.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실려 가 대동맥박리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이 성공할 확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성공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이 올 수도 있다는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9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수술실 안과 밖에서 견뎌냈다. 나는 태연한 척, 남편은 덜 아픈 척 애쓰며 병실에서의 20일을 보냈다.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버티다 보니 감사하게도 우려했던 후유증 없이 퇴원을 하게 됐다.

큰 소용돌이를 겪고 나니 인생의 미련이나 욕심은 좀 내려놓아진 것 같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다리가 뻐근해 지지만 그것이 몸의 약이 되는 것처럼, 인생의 걸림돌에 마음이 뻐근해져도 잘 이겨내면 그 또한 인생의 약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계기가 됐다.

김애경 수필가
김애경 수필가

남편의 몸은 많이 회복됐지만 원기까지 온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의무와 사랑을 미루지 않고 표현해 주는 모습이 감사할 뿐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있어 주는 것만도 감사한 남편의 변화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회복된 몸으로 다시금 사업장을 꾸려가고 있는 남편의 출근길이 감사하고, 각자의 직장으로 떠나 있는 아이들의 문자 한 통이 감사한 하루하루다. 그것만으로도 힘을 낼 넉넉한 조건이지 않은가.

남편은 가끔, 막막했던 그 길 끝에서 손 꼭 잡고 곁을 지켜주던 따스한 온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중년쯤 되면 부부는 전우애로 사는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우애로 표현되는 게 중년 부부의 희화화된 현실이다. 그러나 그 또한 어떠하리. 인생이라는 포화 속에서 서로를 엄호하며 전우애로 살아가는 부부라는 이름. 아름답고 따뜻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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