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목요일, 일주일의 한고비가 또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처럼 하늘은 맑고 아직,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매미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목청껏 한여름을 울어재끼던 매미도 이제 다시 땅속 깊은 곳으로 돌아가 굼뱅이로서의 삶을 견딜 준비를 하고 있겠지. 그렇게 7년을 웅크리고 나와 고작 보름을 치열하게 울다 가는 매미의 운명이 또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그러나 이 감상도 오지랖이겠지. 매미는 그저 제 몫을 충실히 다하고 있을 뿐인데 인간의 잣대로 바라보며 그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 또한….

이 순간, 시지프스의 신화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일일까.

신만큼 뛰어났던 영리한 인간, 시지프스, 신의 영역에 뛰어들었던 그는 신으로부터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데 하데스 언덕까지 무거운 바위를 밀어올리면 정상에서 바로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또다시 바위를 밀고 올라가야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바위는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되풀이되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된다.

흔히 우리는 시지프스가 곧 우리 인간의 삶을 비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삶은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비극적 인식으로 시지프스를 기억한다.

그런데 역시 인간은 영리하다. 알베르 까뮈는 그의 저서 '시지프스 신화'에서 '시지프스가 이 형벌을 내린 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형벌을 즐기는 것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끔찍한 형벌을 즐기고 있다는 시지프스,

아, 나는 이 말에 짜릿한 통쾌함을 느낀다. 신이 나에게 주는 어떤 형벌이라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갑자기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즐거워지는 이 느낌에 오늘 하루는 경쾌할 것 같다.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은 삶의 무게를 때때로 벗어던지고 싶은 욕구 속에서 괴로워한 적도 많았고, 나만 빼고 다들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 열등감에 홀로 눈물 흘린 적도 많았다.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신을 원망하며 어떻든지 그 고통 속에서 헤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나의 신에게 짜릿한 복수를 할 계획이다.

나는 이제 고통을 즐길 채비를 한다. 나의 무게보다도 수십 배 더 나가는 바윗덩어리를 기꺼이 하데스의 언덕 위로 밀고 올라갈 것이며 꼭대기까지 올라간 그 바윗덩어리가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그 광경을 미소 지으며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언덕 아래로 내려와 물 한 잔을 마시고 또다시 그 바윗덩어리, 나의 운명의 바위를 하데스의 언덕까지 밀고 올라갈 것이다. 내 곁에는 항상 시지프스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난 두렵지 않다. 이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영리한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법이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아우성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서서히 위드코로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이 평범한 말 한마디로 인간들은 고통과 함께 즐거움도 누릴 줄 안다는 사실을 아직 우리 신들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키 큰 나무들이 오늘은 유난히 여유롭고 느긋하게 보인다. 아침 햇빛에 반짝이며 가을바람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움직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져보는 목요일 아침, 일주일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기다리는 달콤한 휴일 또한 고통 속의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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