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박현숙 비봉초 수석교사

지난 봄에 주말농장에 몇 가지 채소 씨앗을 뿌렸다. 다른 씨앗은 싹이 나는데, 당근 씨앗은 한 달이 돼도 싹이 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아욱 씨앗을 뿌렸다. 아욱은 기세등등하게 잘 자랐다. 어느 날 그 밑에 자라는 여린 채소싹이 보였다. 아뿔싸 당근싹이 그제사 나고 있었다.

아욱이 씨앗을 맺어서 걷어내니 당근 잎이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이번에 가서 당근잎을 쥐고 힘껏 당겼다. 늘씬하게 자란 주황색 당근이 쑥 뽑혔다. 필자는 주말 농장에서 많은 걸 배운다. 그 중에 하나가 씨앗을 뿌리면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꼭 싹을 틔운다는 것이다. 먼저 씨앗을 뿌렸어도 나중에 뿌린 씨앗보다 늦게 발아하고 열매 맺는게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똑같은 걸 공부해도 금방 알아듣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다. 늦게라도 이해하면 되겠는데, 유독 늦는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을 학습 부진아라고 한다. 학습 부진 아이가 부진인 채로 학년을 올라가다 보면 고학년이 돼서도 구제하기 어려운 걸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올해는 기초학력을 담당하는 교사가 별도 배정돼서 따로 개별지도를 하고 있다. 꼭 필요한 제도이고 공교육이 담당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며칠 전 내 수업 시간에 전에는 주눅 들어 있던 아이가 굉장히 밝아진 모습을 보았다. 기초학력 개별지도 덕분이 아닐까 생각됐다. 씨앗이 발아되지 않는 게 아니라 늦게 발아하는 것이다. 학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늦게 이해하는 것이다.

박현숙 비봉초 수석교사
박현숙 비봉초 수석교사

빨리 간다고 해서 꼭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다는 법은 없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꼭 행복하리란 법은 없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는 말이 있다. 자기만의 시계로 자기 속도에 맞게 가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고 핀잔주지 않고 기다려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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