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권오중 시인·가수

금년에도 어김없이 대 자연은 울긋불긋 아름다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수줍은 여인네처럼 조용히 찾아왔습니다. 무더위 끝에 찾아온 상큼하고 아름다운 가을 신부이기 때문에 더욱더 반가운 손님입니다. 에메랄드색 하늘에는 하이얀 새털구름이 가벼이 날고, 산들바람에 작고 앙증 맞은 얼굴을 흔드는 코스모스와 흰 머리를 날리는 은백색의 억새가 무리를 지어 춤을 추며, 울긋불긋한 물감을 뿌려 파스텔화를 그린 듯한 산야(山野)는 정녕 아름답습니다.

대자연의 빛이 너무 찬란하여 눈이 시려옵니다. 이렇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찬란함이 있기까지는 영광과 슬픔이 도사려 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까지는 무수한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두꺼운 껍질이 째지는 아픔을 겪고 새싹이 태어나,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과 모 진 비바람을 이겨내고서 비로소 소중하고 값진 열매가 탄생하였습니다. 아마 사 랑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도 그렇게 힘겨운 시련 끝에 잉태하는 것 같습니다.

이 찬란한 가을 앞에서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농심(農心)을 읽을 수 있고, 고개 숙인 벼를 보고 겸손의 미덕을 배우며, 인고의 결실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연의 오묘함에 숙연해집니다. 나지막한 산언덕에 삽상(颯爽)한 공기를 마시며 보드란 풀밭을 이불 삼아 가만히 누워봅니다. 파아란 가을 하늘이 바닷속같이 한없이 깊어 보이고 하늘가를 수 놓은 뭉게구름이 그린 듯 아름답습니다.

권오중 시인·가수
권오중 시인·가수

고슴도치 같은 가슴을 열고 소슬바람에 알밤이 툭 떨어집니다. 가만히 밤을 주워 풋풋한 가을 내음을 맡아보고, 알밤을 살짝 볼에 대어 보며 밤나무처럼 그렇게 아낌없이 베푸는 대자연의 고마움에 경외감(敬畏感)이 문득 느껴집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귀여운 다람쥐가 알밤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의 가을 소리가 무척이나 싱그럽고, 서늘한 계곡물의 냉기에 오묘한 대자연의 순리가 느껴집니다.

황금 들녘은 바람결에 일렁이며 풍요로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벼가 베어지고 텅 빈 들녘에는 하얀 공룡알이 차지할 것입니다. 그것의 정체는 무엇 일까? 정확한 명칭은 '생볏집 곤포 사일리지'로서 가축의 사료로 쓰입니다.

이제 청초한 국화의 향긋한 국화 향과 더불어 시련의 무서리가 내릴 것입니다. 무거운 마음의 옷을 하나하나 훌훌 벗어 맑고 깨끗한 계곡의 물에 흘려보내고, 자연의 순수함 속에 귀의(歸依)하라고 재촉하는 듯합니다. 우리네 인생의 가을도 이렇게 찬란하기를 희망하며, 떠나는 10월이 아쉬어 10월 찬가를 불러봅니다.

'황금 나락이 일렁이는/10월의 뜨락이/그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습니다//

빨갛게 노랗게/서서히 물들어가는 산야는/어쩌면 그렇게 고운지요//

새털구름이 두둥실 떠있는/파란 하늘이/유리알처럼 한없이 투명합니다//

툭 하고 떨어진 알밤을/물고가는 다람쥐가/그렇게 앙증맞고// 숲과 들에서 산들바람에/흔들리는 은빛 억새가/정녕 한가로워 보입니다//

이 찬란한 가을 앞에서/경건한 마음으로/감사 기도를 드리며//

64년 만의 10월 한파로/놀란 마음 진정시키며/한없이 내주는 가슴이 되고 싶습니다'('10월 찬가'-권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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