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험 요소는 정치권력의 입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도 그중 하나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생겨 사망한다는 소문에 공포감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내각이 총사퇴하는 등 레임덕에 시달렸다. 이때 '뇌 숭숭, 구멍 탁'은 광우병의 위험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구호였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지시에 '절대복종'을 강요하며 주민통제와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 미국의 느슨한 코로나 방역정책을 비웃으며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초석을 마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을 본받으라는 충고까지 했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인구의 절반이 넘게 사는 루손 섬을 봉쇄하면서 통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총살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다.

일제시대에도 그랬다. '사회와 역사(2011년 90집'에 의하면 일제는 식민통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위생경찰 제도를 도입했다. 전염병 예방, 청결 유지 등의 위생 사업을 경찰 업무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단속했다. 전염병이 돌 때는 은닉 환자를 색출했다. 이런 주민통제와 관리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더욱 본격화됐다. 일본이 전쟁 상황에서 인적자원을 차질 없이 동원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런 여러 사례에서 보듯 일부 국가들은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누가 더 잘하느냐하는 생명관리정치(bio-politics) 경쟁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는 바이오폴리틱스 경연장이 됐다고 지적하는 암스테르담 대학 커뮤니케이션 교수인 제로엔 드 클로에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반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민주적, 비강제적, 인권 친화적 방역정책을 펴는 나라들도 있다. 스웨덴은 마스크를 권장하지 않고 일상생활은 물론 수백 명이 모이는 행사까지 허용하는 인권 친화적 방역정책을 폈다. 그런데 우리 시각으로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세계적 선진국가인 스웨덴이 어떻게 이렇게 한심한 것일까. 정부가 무책임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스웨덴 정부의 평가는 우리의 생각과 크게 다르다. 헌법에 따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부는 락다운을 명령할 수는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를 강조하지만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지각이론(環境知覺理論)에 의하면 위험요소에 대한 반응은 국가마다 집단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예컨대 우리는 북한의 도발과 전쟁발발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갖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화산폭발과 지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코로나19에 대한 반응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와 달리 서구인들은 마스크 착용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 반면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마스크 착용과 백신접종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은 감염병에 대한 우려와 민감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신의 몸에 대한 의료적 통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말한다. "동네 병원에 갔다가 벽에 붙어있는 마늘 주사·우유 주사·비타민 주사 중에 한 가지를 쇼핑하듯 골라잡아서 놔달라고 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또 있을까."(장덕진 서울대 교수)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국민들의 생명과 보건을 담보로 정치적 입지강화와 지배적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보다 사회적 공포감이 더 크다면 그 이면에 잠재된 정치적 의도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인은 감염병에 대한 우려와 민감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생명관리정치'에 더욱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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