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바람이 꽃을 흔든다.

작년에도 그랬고 해마다 가을이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러 갔지만, 꽃이 시들어 싱싱한 꽃이 별로 없었다. 매번 시기를 놓쳤기에 올해는 기필코 보리라 달 포전 짬을 냈다. 그런데 너무 빨리 갔는지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추석 명절을 지내고 다시 왔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꽃이 한창이다. 황금빛 들녘을 배경 삼아 빨강, 분홍, 흰색 꽃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허우적거린다. 여러 각도에서 하늘과 같이 찍어본다. 휴대전화 따라 하늘이 가까워졌다 밀려났다 한다.

초가을 꽃구경은 그런 것 같다. 너무 이르거나 늦거나. 최상의 화기花期를 만나기가 힘들다. 허나 돌이켜보면 그 '적당한 때'는 내가 정한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꽃이 지지 않고 항상 피어 있으면 그건 꽃이 아닐 테다. 봄꽃이 피고 지고 여름꽃이 가고 이렇듯 가을꽃이 와야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생기리라.

서늘해서 가을의 온도가 제법 느껴지는 날이거나, 가슴이 먹먹해져서 숨을 고르는 오후거나, 커피믹스 한잔하며 쉼을 하고 싶거나, 창밖으로 먼 산 바라보다 문득, 그럴 때면 꽃을 보러 간다.

꽃 피고 열매 맺고 씨앗을 남겨 그 씨가 떨어지는 식물의 한 살이. 송아리로 달린 것도 아니고 다복다복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먼 데서 보면 하나인 듯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간간이 부는 바람에도 한들한들 춤을 춘다. 자기주장 내세우지 않는 조신한 여인 같다.

꽃잎 활짝 펼친 당당한 꽃 옆에서 막 나오는 몽우리가 내 모습 같다. 많지 않은 오십 평생 돌이켜보면 모든 일이 느지막이 이루어졌다. 남들 다 활짝 꽃 피울 때 몽우리도 못 내밀다가 다들 할 일 다 하고 앞서가면 그때서야 내 인생은 시작인 듯싶다. 보궐로 들어간 고등학교에서도 취업은 이래저래 밀려났다. 졸업 전에 그나마 괜찮은 직장에 취직은 되었지만,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결혼해서도 아기를 십 년 만에 간신히 낳아 애면글면 살았다. 꽃길만 있을 줄 알았는데 가정에 큰일이 생겨 글을 쓸 수가 없었을 때는, 문학상 받는 이들 꽃다발 들고 축하해 주러 다녔다.

만개한 꽃 옆으로 때를 모르거나 혹은 때늦은 무리가 흔들린다. 꽃이 피었다고 모두가 핀 것이 아니다. 꽃이 파리해지며 빛깔을 잃어가기도 하고 벌써 뾰족이 열매를 맺기도 하고, 몽우리 속에서 때깔만 보이는 꽃도 있다. 그런데도 난 굳이 갈색으로 변해가는 꽃을 보며 나 스스로 꽃이 되고 싶었던 날도 시들어간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속도에, 시선에 나를 맞추어 흔들렸다. 나는 나인 것을, 타인과 비교하며 피워보지도 않고 늦는다고 했다. 내가 선 위치는 타인과 다를 수 있다. 내가 모자라거나 온전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좀 남들보다 늦은 것일 뿐.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사람마다 지닌 재능과 쓰임새가 다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꽃 피는 절정의 때는 따로 있으리라. 훗날의 나는 분명 앞서가는 타인보다 더 많은 걸 얻으리라 확신한다. 타인의 삶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안간힘 쓰고 가슴 아파하던 그동안의 나를 도닥여주고 싶다. 안타까운 발돋움 대신, 느리게 가는 나를 껴안아 주리라.

여덟 꽃잎이 마지막 언어를 발산하고 부드러운 바람 불어와 가을은 환상적이면서도 애잔하다. 피고 지는 순환 속에 한 계절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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