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청주 중앙공원의 수령 900년된 은행나무인 압각수
청주 중앙공원의 수령 900년된 은행나무인 압각수

고서(古書)에서 색이 무척 바랜 은행나무 잎을 찾았다. 40여 년 전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 넣었던 덕분으로 그 고서가 좀이 슬지 않아 비교적 온전했다. 은행잎이 들어있지 않은 책들은 책 옆구리가 많이 파손되어 있었다.

은행나무는 신생대 에오세(Eocene) 시대 식물로 2억7천만 년 전의 식물이다. 계통 분류학상 문(門)에서 유일하게 현존한다. 지구에서 가장 오랫동안 종족을 번식해 온 나무다. '공손수(公孫樹)'라고도 한다. 열매를 늦게 열어(자연 발아 상태에서 80년 이상) 손자와 그 후대를 위한 나무라 해 이 별칭을 얻었다.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이기도 하다.

도로나 공원, 사찰 등에서 은행나무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사찰이나 공원의 은행나무 일부는 수령이 오래돼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수령이 1천100~1천500년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30호다.

도로 가로수로서 은행나무는 비교적 수령이 일천하다. 하지만 노란 단풍과 수려한 수형 등으로 시민의 시선을 제압한다. 도시민이나 차량 운전자에게 가을 정취를 안겨 준다. 산림청은 산소 배출량이 많아 이산화탄소 흡수력이 뛰어나고 병해충에 강해 으뜸 가로수로 지정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표적 가로수로 자리 잡아 온 이유다.

이런 은행나무가 수난을 겪고 있다. 크게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뿌리가 깊게 뻗지 못하고 옆으로 뻗어 보도블록이나 도로를 파손시킨다. 둘째, 광합성 작용이 1년 중 절반에 그쳐 도심 대기질 개선에 비교적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셋째, 은행이 떨어지면서 악취를 풍기고 마구 짓밟혀 도시미관을 해친다.

가장 큰 수난은 악취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부 사람들이 은행을 먹거리로 수거, 채취해 크게 골칫거리가 되지 않았다. 5알 정도의 은행알 꼬치구이는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은행이 내뿜는 악취 주범은 은행알을 싸고 있는 겉껍질의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이다. 겉껍질이 터지면 이것들이 산화되고 지방산이 만들어지면서 악취가 발생한다. 은행은 종족 보존을 위해 악취를 내뿜지만, 동물들은 참기 힘들다. 지독한 발 고린내 혹은 인분 냄새를 연상하면 된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이런 이유로 많은 자치단체는 DNA 분석을 통해 수나무를 심기도 하고, 아예 수종을 교체한다. 가을 정취 제공, 태양열 차단, 도로의 바람길 유도, 기후 조절, 도시환경 정화, 소음 약화 등 가로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한 은행나무가 자칫 도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온갖 악조건에서 열매를 맺지만 새 생명으로 탄생하지 못한 채 그 은행은 삭막한 도심 거리에서 무참히 쓰레기로 전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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