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매일 아침 메모지에 할 일 목록(to do list)을 적어 주머니에 넣고 출근한다. 주로 새벽예배를 다녀와서 적는다. 기도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침밥을 먹다가 생각나는 걸 적기도 한다. 일주일 중 가장 분주한 날은 당연 월요일이다. 종전에 휴대폰 캘린더에 적어 놓은 할일목록을 확인한 뒤, 당해 주간 또는 당일 긴급히 해야 할 일들을 적는다.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그날의 재판 중간중간에 전화, 만남, 또는 글쓰기 등을 통해 일을 처리하고 한다. 어차피 법률가로 살아가는 내가 하는 일은 그 세 부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게으름으로, 때로는 분주함으로 인해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넘기는 경우도 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소망 목록(bucket list)을 적는다. 책을 읽거나 뉴스 또는 TV, 넷플릭스 영화를 보거나, 차량 운전을 하다가,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나면 일단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놓는다. 그리고 시간 날 때 서재의 컴퓨터에 하나하나 적어놓는다. 그중에서 이룬 것들이 많지 않지만, 시간 되는 대로, 형편 되는 대로, 때로는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로 적어놓기도 한다. 2007년에 나온 '버킷 리스트'라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로 인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이라는 뜻의 '버킷 리스트'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다. 이에 따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 목록을 적어 미래에 대한 소망과 비전으로 살라는 내용의 서적도 많이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할 일 목록이 일상을 살면서 섬기는 자로서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적어서 실수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면, 소망 목록은 삶의 풍요를 위해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은 것이다. 적어놓고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 때로는 생각이 바뀌어 목록을 지우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파생되는 다른 목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할 일 목록은 그렇지 않다. 이는 당연히 일상에서 매일 끝내지 않으면 안 될 절실한 것들이다. 10월 지나 11월에 접어드니, 소망 목록보다도 할 일 목록에 더욱 손이 많이 가고 마음도 초조해진다. 10월만 하더라도 멋진 날씨에 풍성한 과실로 상징되는 가을이라는 느낌이 강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었지만, 11월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푸근한 11월을 맞고는 있지만, 머잖아 찬바람이 불어올 것을 알기에 추위가 오기 전에 미리 마쳐야 할 일이 많이 떠오른다.

뿐만이랴. 11월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초조하게 한다. 일 년 열두 달 중 이미 대부분인 열 달이 지나고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몸과 마음을 위축시키고 심란케 한다. 지난날을 허송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도대체 무엇하고 살아왔는가 하는 후회, 연초 세워놓은 계획 중 아직 손도 대지 못한 것들 때문에 느끼는 당혹감 등이 괴롭힌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계절 탓, 세월 탓만 하면서 또다시 허송세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한해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로 삼아 못 마친 것은 정리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시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닥 할 일 목록에만 매달릴 일도 아니다. 소망 목록도 병행해야 할 일이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우리 조상들은 이맘때 겨우내 먹을 김장을 준비하고, 방 윗목에 고구마 통과리, 땅속 무 저장고 등을 만들어 겨울을 대비했다. 그 지혜를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도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 그리고 다가올 겨울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새벽 예배에 나가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말아라'를 부르자고 한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찬양하며 위로를 받았다. 살아온 대로 살아갈 일이다. 매일 할일목록 적고, 때때로 소망목록 적으며, 그날 감당해야 할 일과 훗날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애쓰며 살 일이다. 11월 찬 바람이 분다손, 굳이 떨면서 살 것은 아닌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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