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뭘까? 영국문화협회가 세계 102개 비 영어권 국가 4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1위는 어머니(Mother)가 선정되었고, 2위는 열정(Passion), 3위는 미소(Smile), 4위는 사랑(Love)이었다. 아버지(Father)는 10위 안에도 없었다고 한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오늘의 이 영광을 어머니께 돌리고 싶다." 올림픽 등 세계적인 경기를 보다 보면 자주 듣는 소리다. 아버지도 분명 공로가 있을진대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드셔야 아침식사가 시작되었고 저녁이면 배고파도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저녁을 먹을 수 없었으며 참고 기다려야만 했고 어머니는 밥이 식을까 밥주발을 아랫목 이불 속에 파묻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날 아버지의 초라한 성적표는 참담하기 짝이 없다. 어느 대학의 설문조사에서 '아버지와 TV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이란 질문에 아버지가 아니라 TV라고 대답한 학생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참으로 참담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부쩍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이란 시가 공감이 간다.

미국으로 유학간 아들이 어머니와는 매일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는데, 아버지와는 무심하게 지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이렇게 유학까지 왔는데 "오늘은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전화했다. 마침 아버지가 받았는데, 받자마자 "엄마 바꿔줄게" 하시더란다. 밤낮 교환수 노릇만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온 대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요! 오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하려고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돈 떨어졌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돈 주는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너무 불효한 것 같아서 오늘은 아버지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아버지는 "너, 술 마셨니?" 하더란다. 오늘날의 서글픈 아버지들의 현주소이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는 드물다. 아들이 아버지와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는 것은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의 성묘길이라고 한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모든 재소자들과 반사회적 인물, 그리고 길거리의 부랑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깨어진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진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가 바로 '아버지' 자리인 것 같다. 아버지란 자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직장에서는 내가 없어도 누군가 나의 일을 대신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자리는 내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가정에서 자녀가 남자다움을 배우고 경험하는 유일한 모델은 아버지이다. 우리말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 놀랍게도 80% 이상의 아들이 아버지의 성품과 성격을 그대로 닮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어려운 자리가 바로 '아버지' 자리라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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