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서원대학교 교수

얼마 전 연구년 동안 작업한 번역서 한권을 출간했다. 2017년 미국 브루클린대학의 알렉스 바이탈리(Alex S. Vitale) 교수가 쓴 'The End of Policing'이란 책이다. 경찰행정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제목만으로도 눈길이 가는 책이었다. 그 동안 연구를 하면서 뿌연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느낌이었는데 '엔드 오브 폴리싱'을 읽으며 안개가 걷히고 눈앞에 가야할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언뜻 제목을 보면 이 책은 현대 경찰의 최후(End)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서 엔드(End)란 중의적 의미로서 경찰의 새로운 목표와 존재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미국 경찰의 사례를 바탕으로 쓰여 진 책이지만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우리나라 경찰에도 판박이처럼 적용된다. 이 책은 경찰활동에 근본적인 모순과 역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용기 있게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경찰활동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고, 이젠 경찰활동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경찰에 대한 크고 작은 문제들은 끊임없이 제기 되어 왔다. 크게는 3.15 부정선거처럼 선거개입과 정치개입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 구조적 문제로서 또는 개인적 일탈로서 직무수행 과정에서의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의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런 문제들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 졌을 때마다 경찰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법·제도적 개선방안들이 새롭게 도입되었고, 몇 차례의 대대적인 개혁들도 추진되었다. 올해는 자치경찰제 시행과 수사구조개혁으로 국가수사본부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 경찰 창설 이래 가장 큰 변화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또다시 경찰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으로 경찰의 현장대응력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치면서 해당 경찰관들은 해임되고, 인천경찰청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또 서울에서는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한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문제들은 꾸준히 발생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 논란이 커진 것은 경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달라졌고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찰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관이 되기 위한 자질과 인성을 검증하기 보다는 암기위주의 필기시험에 의해 당락이 좌우되는 현재의 채용제도 아래서는 언제든 인천 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간혹 SNS에 흉기를 들고 난동을 피우는 한명을 경찰관 5-6명이 쉽사리 제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게시될 때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평소 현장대응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격훈련, 직장훈련 등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적용할 수 없는 형식적인 교육훈련이고, 인사평가 점수를 따기 위해서 억지로 참여하는 경찰관들이 많다. 어쩌면 이번 인천과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영식 서원대 교수

우리는 경찰관에게 공권력의 상징인 제복을 착용하고, 합법적으로 물리력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하였다. 격무와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는 일선 경찰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난동을 피우는 사람을 단호하게 제지하고 제압할 수 있는 믿음직한 경찰을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가 불안감을 느낄 때 경찰이 안전하게 보호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싶다. 경찰채용제도와 교육훈련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인성과 자질을 갖춘 경찰을 선발할 수 있는 채용제도의 도입과 언제 어디서든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육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기본적 역량을 갖춘 경찰관이 항시 준비태세가 갖추어져 있어야 제대로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 경찰조직 운용의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바로, '엔드 오브 폴리싱(End of Policing)'의 시대가 도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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