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권오중

하루가 열린다. 어둠의 커튼이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른다. 따스한 햇살이 방긋 웃으며 베란다에 놀러왔다. 머나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찾아왔다. 밤새 오돌오돌 떨던 화초들이 반갑게 찾아온 햇살에 기지개 켜며 환호작약한다.덩달아 내 가슴도 활짝 열린다.

일일초 꽃처럼 하루가 피었다 진다. 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1년이 된다.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러나 그 하루하루는 같아 보이지만 똑같은 하루는 없다. 달력에 그득히 쌓여 있던 하루하루가 얼마 남지 않았다.촛불이 사위듯 그렇게 사위어 간다.

우리네 인생은 촛불 같다. 세상을 밝히며 하루하루 서서히 줄어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키는 작아지고 불빛이 희미해져 간다. 따라서 나이는 먹는게 아니라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추억은 눈물처럼 녹아 촛농처럼 쌓인다.

똑같이 하루가 주어졌지만 아이가 느끼는 하루는 길게 느껴지고 어른은 짧게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어른은 시간이 빨리 간다고 투정한다. 연인과 같이 있는 시간은 너무 짧고 싫은 사람과의 시간은 한없이 길다. 즐거운 사람은 하루가 짧게 느껴지고 슬픈 사람은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계절에 따라 하루의 느낌도 다르다. 봄에는 신록처럼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신록이 금방 자라 초록잎이 되듯 봄날은 그렇게 간다. 여름날은 온난화로 길어졌고 또한 해가 길고 무더워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진다.

반면에 가을은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에 하루하루가 금싸라기처럼 소중하다. 그래서 갈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가을은 금방 지나간다. 이윽고 동장군이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온다. 밤이 길어 겨울의 하루하루는 춥고 길게 느껴진다.

겨울에는 햇살이 슬금슬금 거실까지 놀러온다. 그리곤 내 발을 살금살금 간질인다. 따사로운 감촉이 참 좋다. 어머니 손길처럼 참 따스하다. 멀리서 햇살과 함께 찾아온 하루이기에 더욱 반갑다. 내가 눈을 떠 새로운 하루를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감사하다.

권오중 시인·가수
권오중 시인·가수

하루가 지나가면 노을이 물들고 어둠이 찾아온다. 하늘에 별이 뜨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가정에 사랑별이 뜬다.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사랑이 달큰히 흐른다. 샤워를 하며 하루를 씻어낸다. 그리고 하루도 시나브로 눈을 감는다.

'해님과 놀던 하루/ 어둠의 발을 내린다// 지상에 내려와/ 고된 몸을 누인다// 꽃들도 스르르 스르르/ 꽃잎을 닫는다// 달님이 부끄러이/ 얼굴 쏘옥 내밀면// 어둠의 실루엣/ 설핏설핏 해지고// 사념의 나래 펴고/ 별님에게 오른다'(-하루, 권오중)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