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친구가 사망했다. 평소 건강하고 밝은 모습의 친구였기에 부고를 접한 마음은 슬프기 전에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 멍한 가운데 부고문자를 보낸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급히 와줘야 할 것 같다."

전화를 끊자마자 빈소로 갔다. 빈소는 유족의 훌쩍거리는 소리뿐. 적막했다. 친구와의 생전 일화를 추억하며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인 분위기였다. 희미한 웃음기도 없었다. 적막을 견디지 못하고 담배한대 피우려 빈소 밖으로 나갔다. 흡연장에서 친구가 채무에 쫒기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져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빈소에서 아이를 돌보는 미망인을 보니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슬퍼할 겨를 없이 남편의 채권자로부터 변제 추궁을 당했다고 한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채권자들 중에 내가 아는 이름도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채권자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부의금을 가져가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 걱정되어 나를 급히 오라고 하였다는 친구 역시 그와 금전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빚을 갚은 친구 영정 앞에는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금전관계가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 죽을만큼 힘들었다고 하는데 돈을 융통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 물론 돈을 받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는 사람. 제 각각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굳이 그런 감정들을 탓하지 못하였다.

몇몇 친구들은 자신의 채권을 포기하고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큰 돈을 빌려준 친구들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애도하는 마음이 없었겠는가마는 자신의 생계와 직결된 돈을 받기가 어려워진 상황을 쉽게 받아드리지 못했다.

사업이 기울어 채무가 많아지면 본인명의로 사업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쩔 수 없이 영문을 모르는 배우자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인은 직원이 되어 사업을 계속한다. 그 간의 손해를 단기간에 매우기 위해 무리하게 배우자 명의로 추가로 돈을 빌려 사업을 넓힌다. 빌린 돈에 이자가 붙고 거기에 개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불황이 겹쳐 재기에 실패한다. 배우자 역시 사업자명의로 인한 채무 때문에 경제적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파산 스토리의 클리셰는 친구의 죽음에도 반복되었다.

파산을 택했으면 나는 그의 관재인 혹은 대리인으로 법정에서 그를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죽음을 택했고 그로 인해 나는 그가 아닌 유족의 변호사가 되어야 했다. 친구의 선택은 내게 잔인했다. 하지만 상황 수습이 먼저였다. 앞으로 유족은 상속포기, 명의대여자의 책임, 사용자책임 등으로 분쟁을 겪게 될 터였다.

장례절차가 끝나고 유족들은 상속포기를 하였다. 일부 채권자들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사업자의 명의자였던 미망인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내게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 사망에 대한 나의 출처모를 죄책감은 유족을 위한 싸움에 기꺼이 칼을 빼게 만들었다.

양측 모두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이는 재판이었다. 미망인은 패소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여서 재판은 치열했다. 하지만 상황 탓인지 재판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고요가 더 무서웠다.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지 못했던 미망인은 채무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항상 긴장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몇몇 금융기관에서 제기한 상속채무 소송 외에 별다른 추가 소송은 없었다. 상속채무 재판은 상속포기를 한 까닭에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었지만 유족들은 깊은 상처에 뿌려진 소금처럼 쓰라려 했다. 다행히 유족은 잘 견디어 줬다. 아니 견디는 중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얼마 전 처음 재기된 사건에서 미망인이 승소하였다는 판결문을 수령했다. 승소해서 기뻤다기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두 번째 사건도 승소했다. 미망인은 승소로 인해 조금의 희망을 찾았다. 남은 사건도 조만간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같은 결과를 기대한다. 어둡고 긴 터널의 막바지다. 그 끝에 빚이 아닌 빛이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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