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소월의 문학정신'을 읽다

김소월의 흉상
김소월의 흉상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학창시절 가장 많이 애송하던 시(詩) '진달래꽃'을 지은 김소월 문학관이 증평에 있다. 어떻게 증평에 소월문학관이 들어서게 된 걸까? 사재 40억원을 들여 증평군 도안면 노암로 24에 '소월·경암 문학예술기념관'을 개관한 이철호(82) (사)새한국문학회 이사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한국문학인 300명 핸드프린팅

소월(김정식)·경암(이철호) 문학기념관은 연면적 978㎡에 3층 규모로 2019년 6월 5일 문을 열었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먼저 한국 문학인 300여명의 핸드프린팅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령, 유안진, 정연희, 백시종, 이향아, 정진권 선생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원로 문인 한 명 한 명을 만나 손도장을 받아 만든 이 핸드프린팅은 한국문단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발품으로 만들어진 노력의 산물이다.

전국 문학인 핸드프린팅
전국 문학인 핸드프린팅

문학관 1층에는 소월 김정식 선생의 흉상과 작품집 300여권, 손편지, 가계도, 연보 등 활동상이 전시돼 있다.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난 소월은 1934년 서른 두살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한 명시들을 남겨 대한민국 민족시인으로 추앙 받고 있다.

김소월의 작품집들
김소월의 작품집들

특히 1925년 발간된 소월의 시집 '진달래꽃'(2종, 4점)이 우리나라 근대 문학작품 중 처음으로 2011년 문화재로 등록됐다. 이 시집은 매문사(賣文社)에서 발간한 초간본으로, 진달래꽃을 비롯해 먼후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정서를 절제된 가락으로 노래한 주옥같은 작품 127편이 실려 있다.

2층에는 한의사이자 문학가, 교사, 정치인, 방송인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온 경암 이철호 이사장의 저서와 작품들, 인생스토리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 이사장은 특히 TV드라마로 제작돼 전국적인 인기를 누린 '태양인 이제마'의 저자이기도 하다. 또 '체질대로 삽시다', '체질과 궁합', '야누스의 고뇌', '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등 67종의 의학서, 소설, 수필, 평론, 시집을 출간했으며, 2000년에는 종합문예지 '한국문인'을 창간해 한번의 결간없이 132호째 발간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TV, 라디오 인기방송인으로 유명세를 떨쳤으며, 서울시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곳은 그의 한의사 40년, 문단생활 50년을 기념하는 곳이기도 하다.

 

소월 후손에게 사업 위임 받아

서울 출생인 이 이사장은 1950년 6.25전쟁 중 아버지를 여의고 구두닦이, 신문팔이, 껌·칫솔장사 등을 하며 어렵게 자랐다. 이후 중·고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후 교사로 근무하다 세브란스의대 1호 의사였던 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기위해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했다. 한의사로 일하며 무료진료를 꾸준히 펼쳐 1983년 사회봉사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국민훈장 동백장과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40억원의 사재를 털어 소월 문학관을 세운 이철호 이사장
40억원의 사재를 털어 소월 문학관을 세운 이철호 이사장

그러던 중 소월의 삼남인 김정호 씨의 어려운 생활을 살핀 것이 인연이 돼 장손 김영돈 씨 등 소월의 후손들로부터 2003년 김소월 문학기념사업의 모든 권한을 일임받게 됐으며, 소월의 문학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김소월 문학상, 전국 김소월백일장, 전국 김소월 시 낭송대회 등을 제정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소월이 우리나라 대표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관이 없는 현실을 서글프게 생각하며 문학관 건립을 결심하고, 전국 30여곳을 돌아다니다 증평 도안면의 현부지를 보고 한눈에 반해 10분 만에 이 곳을 선택했다.

자신과 김소월의 처갓집이 증평이라는 공통점이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다. 김소월은 괴산 출신인 '임꺽정'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의 사위이기도 하다. 지금은 증평군이 독립했지만 과거에는 괴산군 증평읍이었다.

 

매주 화요일 무료 문학교실

문학관 1층 한켠에는 잔디마당에 핀 꽃을 보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소월카페'가 있으며, 2층에는 관람객들이 체질을 감별해 볼 수 있는 기기도 마련돼 있다. 문학관 바로 앞에는 6·25 전쟁 영웅인 연제근 상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연제근 기념공원'이 위치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증평군 도안면 노암로에 위치하고 있는 '소월·경암 문학예술기념관
증평군 도안면 노암로에 위치하고 있는 '소월·경암 문학예술기념관

문학관이 개관된지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최근 2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지 못하지만 전국에서 문인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문학기행을 겸해 이곳을 찾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 10월부터 매주 화요일 '한국문인아카데미 무료강좌'를 열고 있다. 문학교실은 일반반, 직장인반으로 하루 2회 오전·오후로 진행되고 있으며, 반별로 10~15명의 수강생이 문학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 이사장은 그들이 펼치지 못한 시인의 꿈, 수필가의 꿈, 소설가의 꿈을 지원하고 있으며, 글쓰기 훈련을 통한 등단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김소월의 작품집들
김소월의 작품집들

이 이사장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김소월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독립문학관이 없는 현실을 제 평생사업으로 생각하고 사재를 털어 문학관을 세우게 됐다"며 "이 곳이 지역과 연계한 예술문학의 메카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학관이 개인 경비로 운영되다 보니 힘든 부분이 많아 태양광시설 설치, 카페 운영 등으로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있다"며 "문학관을 조금 더 활성화 시킨 뒤 국가나 증평군, 관심있는 기업에 기증해 개인의 것이 아닌 공공시설로 자리매김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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