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여행을 가자네요, 1박2일로. 어디로 가냐고요, 청송이래요. 무얼 볼 거냐고요? 그건 몰라요. 그냥 가자면 가고, 쉬자면 쉬고, 보자면 볼 거예요. 사전지식도 없이 가냐고요? 딩동댕…, 걱정할 거 없어요. 15박16일도 아닌 1박2일에, 남미도 아프리카도 아닌 경북 청송이라니까요.

여행이라 설레요. 일상을 벗어나는 거니까요.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고요? 맞아요, 아내와 세 딸, 손녀 이렇게 여섯이 가요. 감기네, 힘드네, 엄살을 떨었어도 나도 운전해야 할 거예요. 딸들이 세운 계획대로 군소리 없이 지내보려 해요.

안심이 돼요. 준비 없이 떠나도 걱정 안 해요. 이 땅에서 사는 걸 한 시인은 '소풍'이라 했잖아요? 이것저것 준비하고 이 세상 오는 이 없어요. 그냥 부모 믿고 한동안 그분들 힘으로 사는 거지요. 한 마디만 더하면 군 생활을 60개월 쯤 했는데 아무 준비 안했어요. 미리 알았으면 훨씬 힘들었을 걸요. 다 안다고 생각하면 미래가 재미도 없잖아요?

가장이 된지 40년 돼가요. 낯선 일들은 내가 해야 하는데 이젠 성인이 된 딸들이 나서고, 그 다음은 아내가 다 할 기세여요. 나는 새로운 일에 설렘보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요. 그러다보니 그냥 익숙함이 더 좋아요. 남들은 내게 도전 정신이 없다고 해요. 어쩌면 그렇게 내 약점을 잘 보나 무서워요. 도전 정신이 없는 게 무슨 문젠가요? 오히려 도전 정신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켜 문제지요.

익숙한 것에는 편안함이 있어요. 도전이 없으니 기복이 없고 게으르고 발전이 없대요. 맞아요, 하지만 그럼 이제 와서 어쩌라는 건가요? 살아온 방식과 거꾸로 살라면 불안해 견디지 못할 거예요. 그냥 타고난 대로 내 식대로 살아야지 어떡해요? 그런대로 살아왔으니 이대로 살 게 두세요. 그대 삶에 나도 밤 놔라 대추 놔라 하지 않잖아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많더라고요. 내가 군 생활 꽤 했댔잖아요. 몰라서 덕본 때가 있어요. 훈련받을 때 유격 중에 담력훈련이라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오싹한 것들 놓아두고 한밤중에 하는 거예요. 깜짝깜짝 놀랄만한 경험을 하면 웬만한 일은 그냥 견딘다는 거지요. 그 날 낮인가 안경이 깨졌어요. 안경이 없어 시원찮은데다 어스레 달밤이니 똑똑히 보이는 게 없었어요. 분명히 보이는 게 없으니 겁날 일 하나 없더라고요.

다 돌고나서 동료들이 무섭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하나도 안 무서웠다고 했어요. 어디서 뭐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제야 알았지요. 참말로 눈에 뵈는 게 없으니 무서운 것도 없더라고요. 모르면 태평하고 용감할 수 있나 봐요.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른다잖아요. 모든 걸 자세히 알려 할 일도 아닌 것 같아요.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아침 일찍 출발하려면 이제 잠을 자야해요. 그렇게 계획을 짰다니까요. 1박2일 동안은 내 생각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하자는 대로 하면 되니 얼마나 좋아요. 운전이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온전히 좋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내일을 위해 조금 두려움과 불안을 가진 채로 잠자리에 들어야 해요. 왜냐고요? 1박2일 동안 청송에 다녀온다니까요. 내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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