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K메디치연구소 소장·전 세광고 교장

한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을 가리켜 '시대정신'(時代精神)이라고 한다. 헤겔(F.Hegel)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이끄는 시대정신(Zeitgeist)이 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지도자다"라고 말한다. 2022년 대선과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시대정신을 구현할 후보들이 과연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는가!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민족독립이었다면, 해방 이후는 산업화와 민주화, 2000년대 들어서는 선진국 진입과 복지 국가의 지향이 우리의 시대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불평등의 해소'라는 데 대다수가 동의한다. 압축성장의 그늘 속에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사회 곳곳에 병폐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청년일자리, 비정규직, 노인빈곤 등 다양하게 논의되는 현안들의 배경에 불평등이라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민감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평등의 문제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를 통해 불평등의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했던 피케티(T. Piketty)는 '노동소득이 자산소득을 따라잡지 못해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산소득은 상속되는 게 일반적이어서 세습자본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피케티가 개발한 불평등지수, 곧 '피케티지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사회는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에 위치해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최근 들어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평등은 인간의 존엄한 권리인 동시에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소중한 가치다. 불평등은 사회통합을 가로막고, 계층 간의 갈등을 생산하며, 사회적 병리 현상을 유발한다. 왕따, 혐오, 자살 등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픈 현실들의 이면에 불평등이라는 그림자가 깔려있다. 윌킨슨(R.wilkinson)을 비롯한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불평등은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 빈부서열이 강화되면 빈곤계층에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생기고, 육체적인 질병으로 발전하면서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소득 하위계층의 평균 수명이 상위 계층보다 2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상대적 빈곤에 따라 평균 수명이 좌우되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한국의 경우, 불평등의 구조를 깨트릴 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소득계층 간의 교육 격차가 심화되면서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불평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일자리를 잃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양산되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원영 세광고 교장
최원영 K메디치연구소 소장·전 세광고 교장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새로운 지도자와 정부를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감염병, 저출산, 기후위기 등, 중대한 과제들도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다가오는 새해,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역량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미래가 달라진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정치사상가, 메스트르(J.Maistre)의 경구를 새삼 가슴에 새겨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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