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외출 후 집에 도착하니 현관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택배인가 싶었던 마음이 비닐봉지라는 것에 머물며 들여다보니 아직도 따끈따끈한 찰떡 한판이 들어있었다.

"손도 크시지....."

누가 가져다 두었는지 짐작이 갔다. 영양 찰떡에는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견과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웃에 사시는 아주머니께서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겨울 간식으로 정성껏 농사지은 콩과 대추. 밤 등을 넉넉히 넣고 영양 찰떡을 만드셨다. 유난히 인심이 후하신 아주머니는 떡이 따끈할 때 몇몇 이웃집에 돌리고 겨울 내내 남편에게 간식으로 데워 주시곤 하였다.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내외분은 남편분이 암투병 중일 때도 먹을 것을 만들어 입맛을 되찾게 간병하셨다. 하지만 남편 되시는 분은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를 보기 미안하고 안쓰럽다며 서둘러 돌아가신 지 올해로 2년째 되는 해이다.

이웃에 살면서 두 분의 잔잔한 사랑 표현을 알고 있었던 터라 떡을 먹으면서도 아주머니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싶은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께서도 외출이 뜸해지는 겨울이면 간식을 만들어 내셨다. 어린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건빵 모양의 과자는 팔십이 넘은 당신이 유일하게 정성을 다해 만드는 작품이었다. 힘만 들고 잘 먹지도 않는데 뭐하러 만드느냐는 자식들의 핀잔에도 수줍은 듯 내어놓는 엄마표 과자.

밀가루 반죽을 건빵 크기로 잘라 젓가락으로 정성껏 모양을 찍어 튀겨낸 맛은 딱딱하고 약간의 쓴맛이 들지만 뒤끝이 살짝 고소하기도 했다. 쓴 맛이 도는 것은 아마도 베이킹파우더 대신 체했을 때 드시려고 보관해 두었던 소다를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먹고살기 바빠서 한창 크는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간식을 챙겨 주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 아프시다는 어머니에게 "간식이 왜 없었수! 내 방에 설치해둔 고구마 발에서 고구마 꺼내 깎아먹고 구워 먹고 또 겨울무가 얼마나 달고 시원했는데…, 먹고 나서 트림과 무 방귀가 지독했지만"

방귀 이야기에 모녀가 웃다 보면 그 옛날 화롯불에 묻어둔 군고구마 냄새가 구수하게 올라오는 듯했다. 어머니는 또 자연스럽게 겨울 간식 중 하나였던 콩 볶음 이야기를 하신다. "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얼른 가서 내 새끼들 밥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에 부지런히 마당에 들어섰더니 다섯 살 된 네가 뛰어나오며…"

"이렇게 말했지? 엄마! 엄마! 우리 콩은 안 볶아 먹었어" 이 나이 먹도록 수 백번 들어서 알고 있는 어머니의 다음 말을 가로채며 우리 모녀는 또 한바탕 웃었다. 종자 하려고 남겨둔 콩을 몰래 볶아 먹으면서 어린 나에게 엄마에게는 비밀이라고 다짐을 주었던 언니 오빠들의 말이 버거웠던지 엄마를 보는 순간 튀어나온 말이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길거리 간식인 붕어빵과 군고구마 냄새가 코끝을 유혹하고 찹쌀떡과 메밀묵 파는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지면 겨울이 왔음을 알 수 있었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 가게 앞에 내어놓은 찜기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뽀얀 자태로 걸음을 멈추게 했던 호빵은 지금도 사랑받는 겨울 간식 중의 하나지만 아주머니의 영양찰떡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따스함이다.

이 겨울 추워지는 날씨 속에 어떤 간식보다 더 맛있었던 어머니와의 지난 추억 나눔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마음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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