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코로나 19 오미크론 변이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다시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에 들어섰다. 기존의 델타 변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감염자 수는 매일 7000명대를 오르내리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조만간 2만 명이 넘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 초기에 방역선진국이라고 자화자찬했던 당국도 민망한지 이제 더 이상 방역선진국으로 부르지 않는다.

백신접종 정책도 신뢰성을 잃고 있다.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접종간격이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고 있다. 처음에는 2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나야 부스터 샷을 맞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3개월만 지나면 추가접종을 하라고 강권한다. 그래서 일까. 급기야 개인들의 활동까지 제한하는 백신패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백신 접종률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뒤집어 말하면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고 생활하려면 빨리 정부의 정책에 따르라는 강제의 의미다.

문제는 백신패스로 인한 인권침해다. 방역패스는 백신접종을 강제하는 영악한 꼼수이자 백신접종 선택자유 침해 등 백신패스 도입을 반대하는 인권단체들의 청와대 진정도 올라왔다. 여러 사정으로 백신을 맞기 어려운 미접종자들은 돌파감염도 많은데 "K방역으로 K왕따가 되었다"고 말한다. 부스터 샷을 맞지 않으면 백신패스를 발급받을 수 없고 이는 곧 낙인효과(stigma)에 의한 차별로 이어진다. 예컨대 코로나19 전염 초기 신천지발 확진자가 크게 늘었을 때, 신천지를 욕하지 않은 국민은 없었다. 이태원 클럽발 감염문제가 터졌을 때도 그랬다.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상호나 개인들의 동선을 여과 없이 공개하여 낙인을 찍도록 만들었다. 백신패스 도입문제도 마찬가지, 접종패스를 소지하지 않으면 낙인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낙인효과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편견과 공격적 감정을 부른다.

사회학자 고프먼(Goffman)에 의하면, 낙인이란 특정 개인을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개인이 특정 사회 맥락에서 가치가 낮은 사회적 정체성을 내포하는 속성이나 특성을 가지고 있을 때, 또는 가지고 있다고 여겨질 때 일어난다. 낙인이 찍힌 사람은 다수에 의해 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지위,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안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낙인찍힌 집단의 구성원은 일자리, 교육, 의료, 사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을 받는다.

낙인은 혐오와 분노가 투사를 통해 나타나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특히 위험성이 큰 전염병이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심해진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듯, 많은 사람들은 '너 때문이야,' '다 너희 잘못으로 우리가 위험해지는 거야'라며 누적된 불안과 분노를 전가시킨다. 낙인찍기가 가속화 될수록 사회는 공격적인 감정을 배태하게 되고 더 진행되면 테러의 형태로까지 나타난다. 코로나19 초기 서구사회에서 마스크를 쓴 동양인들을 공격한 다수의 사례들은 대표적인 경우다.

낙인찍기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보다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이 더 두렵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낙인이 찍혀 감당할 수없는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적인 이야기지만 필자도 2차 백신 접종 후 4개월 이상 지났지만 아직도 팔 근육경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일 위험과 심리적 부담 때문에 부스터 샷을 맞지 않는다면 낙인효과에 노출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오늘도 'K왕따'를 만드는 방역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건강상의 문제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란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시민의식에 기대 낙인찍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