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세상 이치에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르고, 황소가 달리면 암소가 쫓아가고, 수컷 새가 울면 암컷 새가 맞장구친다.(天下 地理, 夫者倡, 婦者隨, 牡者馳, 牝者逐, 雄者鳴, 雌者應)"

중국 주(周) 혹은 당(唐)나라 때 펴낸 '關尹子 三極編'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유래되었다. '남편이 노래를 부르면 아내는 따라 부른다. 남편의 말에 아내가 복종하는 것을 도리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다. '아내는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여필종부(女必從夫)', '아내는 한 남편만 섬긴다.'는 '일부종사(一夫從事)'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 책이 봉건사회에다 가부장제 사상이 지배적일 때 출판된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말이다. 어느 여자 하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아주 먼 옛날 국경선 인근 성읍서 있었던 이야기다. 적군들이 쳐들어와 순식간에 성읍을 점령했다. 적군은 남자는 남겨두고 여자는 모두 풀어주기로 했다. 이때 적군은 여자들이 성읍을 나갈 때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 하나만 가져가도록 허락했다. 금은보화를 가져가는 여자, 암소를 끌고 가는 여자, 가보를 챙겨가는 여자 등등 나름대로 소중한 물건 하나를 챙겨 성읍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여자들이 모두 빠져나갔다고 생각한 문지기가 성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초라한 행색의 한 아낙네가 무언가를 담은 큼지막한 자루를 등에 지고 낑낑대며 다가왔다. 이상히 여긴 적군들이 자루를 열어보라고 했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절대 가져가서는 안 될 성인 남성, 그 아낙네의 남편이었다. 적군들은 남편 대신 다른 것을 가져가라고 여자를 다그쳤다. 여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소중한 것 하나만 가져가라 하지 않았습니까? 제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금은보화가 아닌 제 남편입니다. 남편 이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습니다." 적군은 출문을 허락했다. 그 아낙네는 남편과 성읍을 떠났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왜 그 아낙네는 가장 소중한 것으로 금은보화 대신 남편을 택했을까? 이상적 일심동체의 부부였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거다. 부지불식간 부창부수, 여필종부, 일부종사 등의 사회관습이 남편에 대한 애정보다 더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아낙네는 무의식적으로 남녀차별, 남존여비를 생활 기저에 깔고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남편 우월의 사회관습이 여자 인권이나 삶보다 우선이었고 여자는 그 사회관습을 거부하지 않았고 못했다. 여기에다 가부장제 아래 아내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남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인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그 아낙네는 깊숙이 잠겨 있었던 거다.

여하튼 남자 입장으로 보면 가장 바람직한 아내상이 아닐까? 어디 이런 여자 없나? 여성 권리와 기회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feminism) 시대에 몰매 맞을 일이지만 말이다.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다면 그래도 좋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