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욱이
우리들의 욱이
  • 중부매일
  • 승인 2022.01.0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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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얼굴은 둥글넙적하고 양쪽 눈 사이가 한참 멀었고 눈꼬리는 하늘을 향해 치켜올라가 있고 입은 늘 헤벌쭉 열려있었다. 봄, 여름, 가을,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그는 늘 쪽마루 끝에 나와 앉아있었다. 키가 컹충하게 컸고, 허연 얼굴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는 혼자 햇살과 노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아니지, 유난히 백일홍이 예뻤던 작은 꽃밭의 꽃들을 보면서 햇볕을 쬐며 보내는 것이 그의 일과였는지도 모른다.

어린 우리는 그를 '바보 욱이'라고 불렀다. 어쩌다 하굣길에 열려있는 나무 대문 사이로 오빠도 한참 오빠뻘인 그를 "욱이야~" 하고 부르면 그는 히죽 웃으며 우리를 쳐다보았고, 때로는 "바보, 메롱~" 하고 놀리는 우리를 향해 반갑다는 듯이 어색한 몸짓으로 대문을 향해 걸어오기도 했다. 그럴라치면 우리는 재빠르게 도망치며 "바보, 바보~" 소리치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 날 저녁이면 그의 형수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젊은 새댁이었던 욱이의 형수는 누렇게 뜬 얼굴로 우리 엄마를 붙잡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갔다. 명목은 자신의 아들을 놀리는 우리를 혼내주고 오라는 시어머니의 명을 받고 오긴 했지만 자신의 설움을 풀 길 없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갔다. 바보 아이를 낳았고, 집안에 그런 아이가 있다는 시어머니의 한은 그대로 며느리에게 전달되어 모질게도 서러운 시집살이로 이어졌다. 늘씬하고 이뻤던 욱이의 누나 또한 그런 동생이 있다는 히스테리를 시누이로서 그대로 올케였던 섭이엄마에게 풀고는 했다. 섭이라는 아들을 낳은 젊은 새댁에게는 견디기 힘든 모진 시집살이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욱이의 형수였던 섭이의 엄마, 그 새댁은 몇 번의 보따리를 쌌고, 그 보따리를 우리 집에 숨겨놓았다가 어두운 밤에 떠나기로 했다가는 어린 아들 섭이 때문에 싸놓았던 보따리를 풀고 또 풀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집안에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이 있다는 건 모든 가족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족들은 모두가 다 죄인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그들을 집안으로 숨기기에 급급했다. 밖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고, 집안에서는 늘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다. 특수학교 재활원에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일반 학교와는 달리 특수학교 수업은 처음이라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걱정을 안고 교문으로 들어섰다. 여느 학교와는 달리 앞치마를 두른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등교용 버스에서 휠체어를 내리고 밀고끌고 모두들 밝은 얼굴로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각자의 교실로 들어갔다. 오늘 우리의 수업은 고등학교 전공과 수업으로 업싸이클 목재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지체장애가 있으면 지적 장애도 함께 따라오는 것인지, 핸드폰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의 노래를 똑같은 부분만 반복해서 계속 따라부르는 아이, 표정 없이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는 아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계속 몸을 비틀고 있는 아이, 거기에 많은 우리들의 욱이가 있었다. 집안으로만 감춰져 있던 그들이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 철없이 그를 바보라고 놀렸던 나와, 우리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그들의 장애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다. 조금 다르게 태어나 조금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좀 다르면 어떤가, 또 조금 느리면 어떤가. 빨리 달리려하지 않는 그들과 눈맞추며 바보라고 놀렸던 욱이 오빠에게 사죄하듯이 천천히, 또박또박 아주 천천히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이제 그들은 '바보 욱이'가 아니고, 그저 우리들의 욱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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