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서원대학교 교수

기원전 11세기경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전쟁은 일상 속에서도 약자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이겼을 때 거론되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대결 중 하나로 회자되곤 한다. 이스라엘 왕국과 블레셋 군대의 대치 국면이 길어지자, 블레셋 군대의 장수 '골리앗'은 약 210㎝의 키에 머리에는 청동 투구를 쓰고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데다 던지는 창, 찌르는 창 그리고 칼까지 들고 결투를 청했다. 반면, 상대편 이스라엘의 장수는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어깨 주머니에 담고 지팡이를 들고 블레셋군의 거인 장수와 맞선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이었다. 이 결투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였던 골리앗에게 승리한 다윗의 이야기이다.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은 돌멩이 하나를 물매의 가죽 주머니에 집어넣고 골리앗의 노출된 이마를 향해 쏘았다. 골리앗은 기절하여 쓰러졌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그의 목을 벴다. 블레셋인들은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줄행랑을 쳤다. 다윗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던 양치기였던 반면, 골리앗은 군인이었다. 일화는 우리에게 누가 봐도 대적할 수 없는 상대를 기적적으로 이기는 싸움에 비유된다. 과연 다윗의 승리는 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기적이었을까?

이 싸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있다. 다윗이 사용한 물매는 당시 매우 파괴적인 무기였다. 중세 투석병들은 물매질로 장거리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었고,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의식을 잃거나 죽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다윗은 중무장한 채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인 골리앗에 맞서 속도와 기동력을 바탕으로 그의 약점을 정확하게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일부 의료전문가들은 골리앗이 거인증이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말단 비대증'을 앓고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질병의 흔한 증상 중 하나가 시력 악화이고, 이 때문에 골리앗은 다윗이 빠르게 다가와 물매질을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즉,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다윗이 이길 수밖에 없던 일대일 결투였다고 해석한다.

지구상에는 온갖 종류의 다윗과 골리앗이 있다. 국가와 국가, 기업과 기업,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에도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처럼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상대가 안되는 적수와 골리앗처럼 상대할 엄두도 못낼 강력한 적수가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다윗과 골리앗"에서 '거인'들의 강점처럼 보이는 특성들이 종종 치명적인 약점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약자라는 사실이 종종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뒤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힘 있고 강하게 보인다고 해서 실제도 그런 것도 아니고 작고 나약하게 보인다고 해서 늘 상대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약자가 다윗처럼 골리앗을 꺾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약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일반적 규칙을 벗어나 싸움의 방식을 달리하거나, 상대의 치명적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활용해 자신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과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고 창과 칼로 결투를 벌였다면 아마도 '깜냥도 안되는 놈이 허세를 부리는 대명사'로 비유되었을 것이다. 골리앗도 자신의 강점만 믿고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면 다윗의 물매질에 그렇게 힘없이 쓰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영식 서원대 교수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강자와 약자가 다윗과 골리앗을 교훈삼아 강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약하지만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해를 보내길 바란다. 올해도 예년처럼 온갖 역경, 장애, 불운, 억압이라는 '거인'이 언제든지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다윗의 지혜를 참고해, 압도적일 것 같은 그 '거인'에게 다윗의 물매질로 한방 먹일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