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나는 길치입니다. 내내 살아온 고향 청주에서 길을 헤맵니다. 길 헤매다 늦은 걸 사과합니다. 구구절절 늘어놓기 민망해 그만둡니다. 행사가 끝났습니다. 차 둔 곳에 와보니 내 차 뒤로는 차가 없습니다. 후진해 오다보니 지름길이 나타납니다. 퇴근시간에 복잡하고 먼 길로 돌아간 셈입니다. 밤이 되면 길을 더 분간하지 못합니다. 웬만하면 밤에 운전하지 않습니다. 왜 내가 이럴까. 내 잘못이 아닌듯합니다. 유전이거나 태생적 결함일 겁니다. 부족한 게 여러 가지입니다. 남들은 여러 가지를 잘도 하는데 나는 한 가지도 잘 못합니다. 내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원망도 해보았지만 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긴 세월을 함께 한 이들은 나를 이해하고, 내가 크게 주눅들 일도 아닙니다. 중요한 일 맡지 않으니 부담 없고, 존재감 작으니 편안합니다. 누구에게 벅찬 상대가 되지 않으니 아무도 나를 경계하지 않습니다. 도와주려는 이들 많으니 크게 당황할 일 없습니다. 재능이 필요한 일에 불려 다니지 않으니 내 시간 많아 계획한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면에 나서는 일 없으니 뒤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때로 바쁜 이들이 생각지 못하는 걸 헤아리기도 합니다.

이런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일이고 웬만해서 앞에 나서지 않아 실수가 적습니다. 책임질 일도, 실패할 일도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되는 일도 없습니다. 민망하지만 나는 이런 걸 좋아합니다.

더 좋은 건 항상 겸손하단 소리를 듣습니다. 잘하지 못해, 남들이 하자고할 때 강하게 반대하지 않으며, 자신 없어 목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왜 자신의 의견이 없냐고 회색지대 같다고 합니다. 그곳이 내 자리입니다. 나는 그곳이 또 좋습니다. 조금 깊게 객관적으로 봅니다. 그 분야 지식이 조금만 더 있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그렇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많은 시간을 한 곳에 쏟으면 평균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게다가 보편성과 객관성을 가지면 큰 실수는 줄일 수 있겠거니 마음을 놓습니다.

오랫동안 오늘 저녁처럼 지름길을 앞에 두고 먼 길을 돌았습니다. 어렵사리 찾은 길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겁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합니다. 온 몸으로 온갖 고생하며 가진 것 다 허비하고 아버지 집이 얼마나 따뜻한 곳인가 알았습니다. 집을 떠나보지 않은 형은 그 따스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겁니다. 집이 어려우면, 탕자가 더욱 열심히 가정을 지키려 할 겁니다. 힘든 세월을 살아왔으니 별 일 없음의 소중함을 압니다.

내게는 못하는 것, 안하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은 포기한 것들입니다. 그래도 아직 하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한자, 책읽기와 글쓰기, 컴퓨터입니다. 전문성 하나 없이 구멍가게처럼 이것저것 늘어놓아 무얼 할 거냐는 자책의 소리를 듣습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이렇게 답하렵니다. '내 인생이 그런 걸 어떡해, 내대로 사는 게 행복한 거여.' 정리하지 못하고 가는 게 인생인데, 조금 더 늘어놓은들 크게 흉 될까?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남은 날들을 살려 합니다. 부족한 대로 존재감 없이 가볍게 변두리로 사는 게 내 삶의 방식이라면 너무 허무하다 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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