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1월 중순이 겨울방학의 중간쯤이었던 때로 기억된다. 함박눈이 쌓인 날이면 눈싸움을 하면서 눈사람도 만들고, 길쭉한 고드름 따다가 칼싸움도 하고, 추운 날씨에도 꽁꽁 언 논바닥에서 팽이치기와 앉은뱅이 썰매를 타다가 쉬 자리의 얼음을 깨고 개흙 속에서 겨울잠 자는 미꾸리 찾느라 정신없어 배고픔도 모르니 방학숙제도 잊어버린다.

수수깡으로 만든 연을 가지고 뒷동산에 올라 친구들과 같이 날리며 경쟁하던 연줄 끊기는 해가 져 어두어도 무승부다. 쥐불놀이하느라 콧구멍이 새까매진 친구들 지금은 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서로 그리워하고 있을까?

새벽을 깨워 먼동을 틔운 닭들이 수북하게 쌓인 눈을 피해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먹이를 찾는데, 밥하러 나온 어머니가 싸라기 한줌을 '구구구~' 하며 대문 앞에 뿌려주면 쏜살같이 달려와 빈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후식으로 눈까지 쪼아본다. 그 옆에는 언제 왔는지 까투리도 끼어들어 다투지도 않고 잘 어울려 모이를 찾다가 기척이 나면 훌쩍 날아간다. 7~80년 전 시골풍경이다.

아침 새때가 되면 산토끼가 까치와 동무해서 민가로 내려와 다 먹고 버린 고구마 껍질이나 양지바른 담장 밑에서 봄을 기다리는 풀을 야금야금 뜯어 먹다가 인기척에 놀라 얼른 담 모퉁이로 숨어버린다. 참새나 산비둘기들은 타작해서 쌓아놓은 볏 집을 헤집으며 덜 떨어진 낱알을 잘도 찾아 먹는다. 양지 녁에 가만히 앉아서 일광욕을 하다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던 광경이다.

마당의 눈을 치운 친구들이 모여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산으로 올라간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지만 뒹굴어도 다치지 않으니 안심하고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비탈진 야산의 키 작은 나무 밑엔 꿩이나 토끼 같은 짐승이 숨어서 추위를 피하거나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 살금살금 다가가 맨손으로 움켜잡거나 도망치면 그물 친 쪽으로 몰아가서 잡는다. 한두 마리만 잡으면 사냥은 끝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추운 날씨인데도 땀이 난다. 집에 들어오면 땀에 옷이 흠뻑 젖기도 한다. 오래전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지금은 해볼 수도 없지만 결코 해서도 안 되는 놀이다. 어쩌면 심심산골에서는 더러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땐 왜 자연보호운동을 하지 안했지?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는 무서운 산짐승이 동네로 내려오기도 한다. 홰에서 자고 있는 닭이나 집을 지키는 삽살개를 흔적도 없이 물어가기도 하고, 우리 속에서 자고 있는 돼지를 피도 흘리지 않고 잡아갔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개호주가 업어간다고 하는데, 개호주가 나타나면 집짐승(家畜)은 무서워서 아무 반항도 못하고 그냥 당했다고 한다. 개호주가 어떻게 생겼지?

텅 빈 돼지우리만 보았지 개호주에게 업혀가는 현장을 본 것이 아니니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란 말이 그럴듯하다. 새끼호랑이인 개호주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을까? 아이들보고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는 경고는 아니었을까?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개호주가 물고서 끌고 가거나 모는 데로 쫓겨 간 개나 돼지는 깊은 산속까지 가서 최후를 맞게 되는데, 먹고 남은 것은 늑대나 여우같은 육식동물의 포식거리가 되기도 한다. 돼지우리가 집 밖에 있으니 물려가도 모르고 있다가 아침밥을 주려고 문을 열 때서야 없어진 것을 알고 법석을 피운다. 우리가 부서진 곳도 없으니 혹시 못된 사람 짓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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