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항상 '왜?'라는 질문을 품고 항상 깨어있어야"

조승희 전 중부매일 편집국장 /김명년
조승희 전 중부매일 편집국장 /김명년

[중부매일 박은지 기자]언론은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시민들이 지역신문에 대해, 그리고 언론의 존재가치에 대해 되묻고 있다. 지난 11일 청주의 한 음식점에서 원로 언론인인 조승희 전 편집국장을 만났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 속에 '물음표'를 품고 살았던 한 언론인의 발자취를 통해 종이신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갈 길을 모색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서인석 국장이 동석해 입사시기 25년차의 선·후배 기자의 간극을 메워주고 공감대를 이끌었다. / 편집자

"중부매일이 올해로 창간 32주년이 됐다. 32년이 됐으면 뿌리가 단단해지고도 남는다. 뿌리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뿌리가 내려가면서 돌부리도 헤처 나가고 진흙탕도 거치면서 튼실하게 성장했다고 믿는다. 지금도 신문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로써 비판기사가 미담기사보다 7:3정도의 비율로 차지해야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종이신문은 방송에서 영상으로써만 다루지 못한 심층적인 기사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다룰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신문을 봐야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게 신문기사의 매력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활자매체는 절대 없어질 수 없다. 그게 신문이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존재가치가 된다. 기록은 보존돼야 하고, 그게 활자매체가 어렵지만 생명력을 갖고 있는 이유다."

 

택시기사로 연 제2의 인생

조승희 전 편집국장은 1949년 출생으로 충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1978년 충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9년 중부매일 창간과 함께 사회부장으로 입사, 행정부장, 광고국장, 정치부장을 거쳐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거친 뒤 2007년 정년퇴직했다.

그는 퇴직후 택시기사로 4년, 가스충전소 6년, 도합 10여년을 근무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시 제2의 인생을 설계한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와 기자이후의 삶에 대한 의문을 품는 말도 흘러다녔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퇴직 후 1년은 어머니 간병으로 병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정말 출근할 곳이 없었다. 명색이 기자출신인데 어디가서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서 장사나 사업을 하는 건 겁이 덜컥 났다. 몸으로 부대끼는 걸 찾다가 충북택시조합에 가서 운전기사 시험을 치렀다. 그 시험성적도 90점을 넘었고 교통안전공단에 가서 교육을 받은 후 청주택시에 지원을 하러갔다. 그렇게 4년을 일하다가 청주시 주중동 용연가스충전소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길래 바로 이직을 해서 6년여간 또 일해왔고 이후 손목이 안좋아 수술후 퇴직했다."


 

기자생활의 시작과 기억남는 일

편집국장 시절 비판기사 7대 미담기사 3의 비율을 나름의 철칙으로 고수했다는 그가 회상하는 그의 기자시설은 어땠을까.

"내가 수습기자 시절 사수였던 선배 기사를 보고 쓰면서 기사쓰기를 배웠다. 당시 '옥천 지탄역 열차 추돌사고'가 발생해 밤새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과 함께 택시로 보낸 기억이 있다. (지탄역 열차 추돌사고는 지난 1977년 7월 24일 지탄역에서 부산행 제21 특급열차와 정차중이던 용산발 부산행 161 완행열차가 추돌해 객차 1량 등 총 4량이 탈선해 18명이 숨지고 80명이 중경상을 입었던 사고).

또한 사회부 기자시절 경찰서 사쓰마와리(경찰담당기자를 가리키는 은어로 정보를 얻기 위해 경찰서 등을 정기적으로 도는 일)돌 때 화물차가 강도를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동행취재한 것도 기억이 난다. 당시 수사과장이 한바퀴 현장을 돌더니 신고가 없던 일로 하자고 회유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참 괜찮은 수법이네요'라고 받아치면서 '내일 쓸 기사가 없어서 다른 기사를 주던지 아님 이걸로 쓰겠다'고 하며 '없던 걸로 하지요'까지 추가할까요?'라고 했더니 당시 수사과장이 기함을 했다. 하숙집에 가서 밤새 기사를 쓰고 보내려니 경찰서 계장 2명이 쫓아와 본인 자기네 과장이 죽는다고 재차 회유와 압박을 해 나도 기자로 죽을 순 없다고 맞받아 치며 그대로 기사화 했던 것도 기억난다."


 

기억나는 사람들과 일화

조승희 전 편집국장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중부매일신문 초대 발행인 겸 사장이었던 故 이상훈씨와 1993년 제2대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승재씨를 종종 언급했다.

그 중 이승재 당시 중부매일 사장과의 일화는 조승희 전 편집국장이 갖고 있었던 언론에 대한 철학과 그의 강단있는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승재 사장께서 당시 한 사업가와 식사를 하시면서 기사를 빼달라고 전화를 하신거야. 걱정하시지 말라고 해놓고 사회면에 갈 기사를 1면 3단으로 배치했지. 다음날 사장실로 불려올라간 자리에서 '그런 부탁하신 분도 정신차려야 한다. 그래야 사장님이 앞으로 편해지신다'고 눙을 치자 이승재 사장께서 '이 XX , XX하네'라며 넘어간 적도 있었다. 이승재 사장은 어딜 가나 나를 '내 친구 편집국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신문에서는 나보다 선배'라고 추켜세웠던 기억도 난다."


 

언론의 역할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2년여간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시대. 기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폭은 더 좁아졌고 열악해지고, 취재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21세기 코로나19 시대 언론의 나아갈 방향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조승희 전 중부매일 편집국장 /김명년
조승희 전 중부매일 편집국장 /김명년

조승희 전 편집국장은 "지금 소셜미디어가 대세아닌가. 예전의 대선후보들은 청중들을 모아놓고 목청껏 소리높여 연설했지만 2022년 대선후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동영상으로 홍보하는 시대다. 그걸 만드는 건 MZ세대다. 그걸 살릴 수 있는 기반은 변화에 몸을 실어야 한다"며 "기준만 확실하면 된다. 아무리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고 1인 미디어가 대세라곤 하지만 언론사에서 잘 훈련된 기자들이 쓰는 기사를 능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자는 사안을 바라볼 때 '왜'라는 물음표를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미담기사까지도 뒤집어 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사회부기자는 그런 시각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사건사고에서 억울한 피해자는 없는지 그걸 볼 수 있는 '기자의 감과 촉'이 있어야 한다. 기자는 팩트를 활용하고 책임져야 할 숙명이 있다. 팩트체크는 너무 고되고 힘들지만 그게 언론의 본연의 역할 아닌가. 나때는 '기레기'니 뭐니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았다. 지금 과도기를 버텨내는 후배들이 훌륭한 사람들인 걸 잘 안다. 글을 쓰고 사고가 깨어 있어야만 한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말은 시대를 초월한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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