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년여의 준비기간에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행을 코앞에 두고 곳곳에서 앓는 소리다. 위헌소지가 거론될 정도로 법안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거듭됐지만 법안처리때와 마찬가지로 강행기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최근 광주 아파트신축 붕괴사고로 인해 처벌강화 목소리가 더 커져 버렸다. 일명 '김용준 사고'로 본격 추진된 법안이 광주 붕괴사고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런 법안이 필요할 만큼 우리의 산업현장은 불안하다. 그럼에도 처벌 만능주의로는 근로자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법안이 만들어질때부터 지적됐지만 이 법은 태생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산업안전 강화가 아닌 사업주 처벌강화에 방점을 찍다보니 책임회피를 위한 편법 등 빠져나갈 구멍이 벌써부터 등장했다. 문제 발생시 사업주를 강하게 처벌해 산업현장의 안전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인데 책임만 피하면 그만인 것이다. 중대재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현장에서 이런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한다. 특히 투자여력이 많지 않은 중소건설사 등에서는 고육지책이라도 써야 할 판이다. 안전이 아닌 처벌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처벌수위로 업체와 사업주들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안전관리 전담인력 확충은 기본이고 현장을 점검하는 등의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그동안 관행처럼 이뤄졌던 일들부터 바꾸지 않으면 사고발생 가능성은 늘 뒤따른다. 지난해 충청권내에서 예방조치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이 45곳이나 된다. 법 시행이후라면 이들 모두 사업주 처벌 대상인 셈이다. 물론 처벌강화에 따라 그 숫자나 규모는 줄겠지만 모호한 규정만큼이나 책임을 회피하는 일 또한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시행을 이틀 앞둔 중대재해법에 다시 관심이 쏠린 데에는 청주오창 에코프로비엠 공장 폭발화재가 있다. 사망자가 발생한 만큼 산업재해로 인한 부담도 크지만 주가가 폭락하고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등 기업체로서 치명상을 입었다. 더 나아가 한동안 안전에 대한 우려가 꼬리표처럼 붙게 될 것이다. 갈수록 커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도 연관이 있다. 중대재해 등의 잣대가 아니어도 기업 스스로 안전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할 까닭이다. 사업주의 처벌 여부보다 현장안전이 더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산업안전, 근로자 안전을 보장하려면 처벌 강화보다 안전의식을 높이는 쪽이 효과적이다. 업체와 사업주가 안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현장 안전을 확보한다면 상황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처벌강화로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얻을 수 있지만 안전을 얻는데는 한계가 있다.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익숙한 상황에서 처벌만으로는 안전을 지킬 수 없다. 먼저 안전의식을 높여야한다. 사업주는 물론 근로자들도 함께 해야 한다. 관행이라는 덫을 없애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불감증을 고치지 않으면 안전은 백년하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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