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질 하는 '영미' 없지만, 눈빛·손짓만 봐도 알아요"

문성관 충북 휠체어 컬링팀 감독과 선수단이 지난 21일 청주실내빙상장에서 연습경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명년
문성관 충북 휠체어 컬링팀 감독과 선수단이 지난 21일 청주실내빙상장에서 연습경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명년

[중부매일 정세환 기자] "영미! 영미! 영미!" 김은정 선수가 김영미 선수를 부르는 '영미'는 지난 2018년 개최된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최고의 유행어였다. 또 우리나라 여자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에서 컬링으로 메달을 획득하며 전 국민의 큰 화제를 모았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전국 동계체육대회를 한 달 가량 앞둔 지금, 충북에서 새로운 컬링의 역사를 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중부매일이 청주실내빙상장의 지하 컬링장에서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충북 휠체어ㆍ농아인 컬링팀을 만났다. /편집자

◆스위핑 없이 오로지 스톤만으로, 휠체어 컬링팀= 충북 휠체어 컬링 팀은 지난 2008년 창단됐다. 창단 다음 해부터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장애인동계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할 정도로 오랜 기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팀이다.

휠체어 컬링은 우리가 흔히 아는 컬링과는 다르게, 손으로 직접 스톤을 밀지 않고 딜리버리 스틱을 사용해 스톤을 민다. 또 스위핑(스톤이 얼음판 위에서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선수가 스톤의 진행 방향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행위)을 하지 않아, 스톤을 미는 데에 있어 더 높은 집중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팀은 선수 7명과 감독과 코치 각 1명 등 총 9명으로 이뤄져 있다. 휠체어 컬링 팀의 감독과 코치는 농아인 컬링 팀의 지도 또한 담당한다.

선수들은 전·현직 론볼, 파크골프, 탁구, 펜싱 등 하계 운동종목 선수여서 장애인 체육 분야에서 잔뼈가 굵다. 특히 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 박종석 선수는 10년 넘게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또 지난 2020년 겨울 선수 보강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휠체어 컬링 팀은 주 4회 오전에 2시간씩 모여 훈련을 한다. 선수들 각자 직업과 개인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정은 차가운 얼음 위 추위도 녹일 정도이다.

다름 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목표는 다음 달 장애인동계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지난 2019년에는 6위를 해서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 만큼은 꼭 메달을 획득하겠다는 각오가 확실하다.

지난 2019년부터 팀의 코치를 맡고 있는 이윤지(27) 충북도장애인체육회 생활체육지도자는 "가능성과 실력 있는 신규 선수를 많이 발굴해 새로운 마음으로 동계체전에 출전하게 되는데, 모두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며 "훈련 참석률도 굉장히 좋고, 선수들이 언제나 훈련 이상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서 이번 체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목소리 대신 마음으로 소통하다, 농아인 컬링팀= 충북 농아인 컬링 팀은 지난 2021년 1월 창단된 신생 팀이다. 그럼에도 지난 달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여자 팀과 남자 팀이 창단한 지 10년이 넘는 팀들을 다 제치고 각각 2등과 3등을 하는 등, 이번 장애인동계체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괴물' 팀이다.

농아인 컬링은 우리가 흔히 아는 컬링과 동일한 경기 규칙으로 운영된다. 다만 경기 중에 선수들이 보청기를 착용할 수 없고, 선수 외 감독이나 코치, 통역사가 작전 타임으로 주어지는 단 1번, 5분을 제외하고는 개입할 수도 없다. 이렇게 대화가 아닌 수화로 소통해야 하는 농아인 컬링에서는 비장애인 컬링 보다 더 뛰어난 팀워크가 요구된다.

문성관 감독, 이윤지 코치, 조민희 수화통역사와 충북 농아인 컬링 팀 선수들이 지난 22일 훈련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충북도장애인체육회 제공
문성관 감독, 이윤지 코치, 조민희 수화통역사와 충북 농아인 컬링 팀 선수들이 지난 22일 훈련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충북도장애인체육회 

팀은 선수 12명과 감독, 코치 각 1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휠체어 컬링과 농아인 컬링 모두 한 팀당 4명이 경기를 치르지만, 혼성으로 경기하는 휠체어 컬링과는 다르게 농아인 컬링은 남녀 경기가 구분된다. 그래서 충북 농아인 컬링 팀도 남자 팀과 여자 팀을 따로 갖추고 있다.

농아인 컬링 팀 선수들도 휠체어 컬링 팀 선수들처럼 유도, 육상, 알파인 스키, 농아인 야구, 축구, 사이클, 보디빌딩 등 선수들 개개인의 체육 경험이 강점이다. 또 자매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서은지(19), 서은주(17) 선수의 '찰떡' 팀워크도 팀의 자랑거리이다.

원래 매주 토요일에 모여 훈련을 하지만, 최근 체전에 대비해 강화훈련을 시작하면서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도 모여 훈련을 하고 있다.

조민희 수화통역사가 훈련 중 충북 농아인 컬링 팀 선수들에게 이윤지 코치의 말을 통역해주고 있다. /정세환
조민희 수화통역사가 훈련 중 충북 농아인 컬링 팀 선수들에게 이윤지 코치의 말을 통역해주고 있다. /정세환

컬링 전문가는 아니지만, 훈련 때마다 선수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민희(28) 수화통역사이다. 지난해 3월부터 농아인 컬링팀의 통역을 전담하기 시작한 조 통역사는 훈련장에서 2~3시간을 쉬지도 않고 감독과 코치 옆에 딱 붙어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돼준다. 얼음 위에 계속 서 있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추울 법도 한데, 조 통역사는 오히려 개인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훈련장에 나와 장애인 체육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조 코치는 "처음에는 컬링 전문 용어를 표현할 수 있는 수어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며 "통역사 일을 하면서 컬링에 대해 하나씩 배우다 보니, 선수들에게 통역을 보다 잘 해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충북의 컬링 개척자, 문성관 감독= 문성관(47) 감독은 대한민국 컬링 1세대 선수이면서 충북에 처음으로 컬링을 들여온 컬링계의 선지자이다.

문성관 충북 장애인 컬링 팀 감독이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슈퍼바이저로 활동하던 모습 /충북도장애인체육회  
문성관 충북 장애인 컬링 팀 감독이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슈퍼바이저로 활동하던 모습 /충북도장애인체육회  

충북과 경기에서 보냈던 13년 간의 선수 생활 중 전국 동계체전에서 10번 가까이 메달을 획득했을 정도의 실력파 선수였다. 충북에서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후에는 충북에서 감독직을 시작, 고교 팀과 성인 팀, 장애인 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팀들의 지도를 맡아왔다. 그는 지금도 봉명고등학교 남녀 컬링 팀과 충북 휠체어 컬링 팀, 충북 남녀 농아인 컬링 팀 등 총 5개 팀의 감독이다. 또 평창 동계 올림픽 컬링 종목 슈퍼바이저 등 컬링계에서 그의 행보는 종횡무진이다.

문 감독이 장애인 팀을 맡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도부터이다. 선수층이나 장비 등 기본적인 여건이 마련돼지 않은 시점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하나 쌓아올렸다. 그 결과, 충북의 장애인 컬링은 타 시·도에서 부러워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감독이면서 현재 봉명고등학교의 체육 교사이기도 한 그는 선수 지도 뿐 아니라 후학 양성에도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다. 충북 장애인 컬링 팀의 이윤지 코치 또한 고교생 시절부터 문 감독이 직접 양성한 수제자이다. 또 문 감독은 지난 2008~2014년에는 충북컬링협회의, 2018년부터 지금까지는 충북장애인컬링협회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선수 육성과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서라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는 선수와 주변 체육인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다.

문 감독은 "선수들이 곧 있을 장애인동계체전에서, 특히 농아인 팀은 퀘백 동계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는 곧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팀이 될 것"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이어 "장애인 체육의 실업팀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도민 여러분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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