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동빈 사회경제부 차장

통제선 밖에서 슬리퍼를 신고 어쩔 줄 모르는 여성, 검은 잿더미를 뒤집어 쓴 채 바닥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청년들, 그 사이를 지나 퇴근길에 오른 한 남성. 지난달 21일 오후 6시 청주 에코프로비엠 폭발현장의 모습이다.

슬리퍼를 신은 여성은 이날 사고로 목숨을 잃은 30대 직원의 가족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도 얇았던 여성의 옷매무세를 보면 얼마나 다급하게 현장을 찾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찬 바닥에 앉아 컵라면을 먹은 청년들은 목숨을 걸고 불길을 잡은 소방대원이다. 몇 시간의 사투를 벌이고, 고작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하지만 이들은 이 순간에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아직 현장에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요구조자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뭣이 그리 급한지 퇴근시간이 되자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간 한 남성. 장거래 충북도소방본부장이다.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현장에 도착하자 우렁찬 목소리로 '충성'을 외친 그의 모습은 이곳이 생사가 오가는 재난현장이 맞는지 의문을 품게 했다. 의전을 마친 장 본부장은 구조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성과 찬바닥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청년들 사이를 지나 퇴근차량에 올라탔다. 도지사가 떠난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요구조자의 생사는 장 본부장이 떠나고 20여분 후 확인됐다.

신동빈 사회부 기자
신동빈 사회경제부

2017년 12월 제천화재참사 당시 이일 충북도소방본부장 역시 정치인 의전에만 신경 쓰다 비판을 자초했다. 특히 그는 현장을 찾은 정치인들을 의전하며 소방사다리차 부실대응 문제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 거짓해명을 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던 얕은꾀는 더 큰 비난으로 되돌아왔다. 권대윤 충북도소방본부장은 갑질 문제로 곤혹을 치렀다. 당시 권 본부장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충북소방을 싸잡아 비판해 논란을 키웠다.

충북소방 수장들이 충북소방의 명예를 깎아먹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조직을 이끌어야 할 리더가 오히려 짐이 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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